잇단 ‘묻지마 흉기난동’에 이어 전국에서 살인을 예고하는 온라인 게시물이 쏟아지면서 하룻만에 24명의 작성자들이 경찰에 붙잡혔다. 이로써 살인예고글과 관련해 체포된 이들은 54명으로 크게 늘었다. 검거된 피의자는 대부분 10대로 범행 동기에 대해 “장난이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테러방지법 개정 등을 통해 처벌이 어려운 현행 법을 보완해 강력 처벌에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수사 기관도 엄중 처벌 방침에 대해 재차 강조하고 나섰다.
6일 경찰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신림역 흉기난동’ 사건 이후 살인예고글과 관련해 54명의 피의자들이 체포돼 1명이 구속되고 나머지는 조사를 받고 있다. 4일 새벽 SNS에 ‘경찰관을 찔러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리고 강남고속터미널에서 흉기를 소지한 채 돌아다닌 혐의를 받는 20대 남성 허 모 씨도 구속됐다. 경찰은 작성자를 체포하지 못한 나머지 게시물에 대해서도 인터넷 프로토콜(IP) 추적 등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검거된 이들 가운데 대다수는 미성년자로 알려졌다. 지난 5일 오후 SNS에 “계양역에서 7시에 20명을 죽이겠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10대가 6일 경찰에 붙잡혔고 지난 4일 경기 하남시·부산 해운대·경북 구미역에서 흉기 난동 및 살인을 예고한 세 건의 글 작성자도 모두 미성년자로 드러났다. 원주역에서 칼부림을 저지르겠다는 글을 작성한 뒤, 마치 이를 발견한 것처럼 SNS에 제보하는 자작극을 벌인 고등학생도 하루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이들은 모두 경찰 조사에서 “장난이었다” “관심 받으려 그랬다”는 등의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살인예고 글 유포가 하나의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최근 2주 새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흉기 난동이 연달아 벌어진 뒤 공포감이 고조된 틈을 타 사회 불만을 드러내거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한다는 것이다.
이웅혁 건국대 경찰학과 교수는 “흉기 난동 사건 이후 불안해진 심리에 편승해 국민적 관심 사안에 본인이 영향을 주려는 심리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한국범죄심리학회장을 역임한 김상균 백석대 경찰학부 교수도 “현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표출하면서 희열을 느끼는 것”이라며 “10대의 경우 오프라인 상에서 폭력 등을 통해 과시하던 존재감을 SNS가 갖고 있는 익명성을 이용해 표현하려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경찰은 검거된 피의자들에게 협박·특수협박 혐의를 적용해 수사하고 있다. 협박죄는 3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형, 특수협박죄는 7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할 수 있다. 경찰은 살인이나 상해를 구체적으로 준비한 정황이 드러나면 살인예비나 상해예비 혐의도 적용할 방침이다. 다만 대상이 특정되지 않은 온라인 게시물만으로 처벌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신민영 법무법인 호암 변호사는 “협박의 대상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 않으면 혐의 적용이 어렵다”며 “흉기 구매를 인증한 경우에는 살인 예비 음모죄 적용을 검토해볼 수 있다”고 말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살인 예고글도 테러 전 예비 행위에 해당할 여지가 있는 만큼 테러 예비 및 협박 행위로 간주해 처벌할 수 있게 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수사 당국도 한 목소리로 엄정 대응을 경고하고 나섰다. 경찰이 지난 4일 사상 처음으로 특별치안활동을 선포한 데 이어 대검찰청도 6일 ‘중대강력범죄 엄정 대응 긴급회의’를 열었다. 이날 이원석 검찰총장은 흉기 난동 피의자에 대해 “초동수사 단계부터 경찰과 협력해 법정 최고형의 처벌이 이뤄지도록 하라”고 지시하고 살인예고글에 대해서도 “협박죄 외에도 살인예비, 위계공무집행방해 등 가능한 형사법령을 적극 적용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지난 3일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 당시 피의자 최모(22) 씨가 운전하던 승용차에 치여 뇌사 상태에 빠졌던 60대 여성이 6일 오전 사망했다. 경찰은 5일 구속된 최 씨의 혐의를 ‘살인미수’에서 ‘살인 등’으로 변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