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이 너무 잘 나올까봐 걱정입니다.”
2분기 실적 발표를 앞둔 한 라면 기업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국제 밀 가격 하락세가 원가에 본격적으로 반영되기 시작한 것은 3분기 초입인 지난달부터다. 그 전까지는 각종 비용을 절감하고 해외 영업을 강화하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써왔는데 실적 자료에 적힌 숫자만 놓고 보면 마치 원가 하락의 혜택를 받은 것처럼 보일 수도 있어 벌써 걱정이라는 뜻이다. 무엇보다 갖은 자구책 가동에 힘입어 개선된 실적을 바탕으로 정부가 추가 가격 인하 압박에 나서지는 않을지 식품 업체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민들의 반응도 심드렁하다. 정부는 라면이 ‘국민 음식’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라면 업체에 가격 인하를 압박했지만 소비자들은 정작 체감하지 못하는 분위기다. 라면은 1970~1980년대 과거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 쌀밥을 대체하는 한국인의 주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전자레인지에 30초만 돌리면 완성되는 가정간편식(HMR)부터 빵·시리얼까지 쌀밥을 대체할 수 있는 수만 가지의 먹거리가 주변에 널려 있기 때문이다. 세계라면협회(WINA)에 따르면 한국의 연간 라면 소비량은 2020년 41억 개로 정점을 찍고 지난해 39억 개로 줄어드는 추세다. 국민 1인당 일주일에 약 1~2개의 라면을 먹는 셈이다. 반면 같은 이유로 파스타 값 인하 압박에 나섰던 이탈리아의 경우 국민의 60%가 매일 파스타를 먹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의 ‘라면 값 때리기’와 이탈리아의 ‘파스타 값 때리기’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 정도가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부의 ‘보여주기식 압박’은 기업의 ‘보여주기식 응답’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삼양식품과 오뚜기가 라면 가격을 인하하되 판매량이 많은 ‘불닭볶음면’과 ‘진라면’을 대상에서 제외한 게 대표적이다. ‘신라면’ 값은 개당 1000원에서 950원으로 50원 내렸다. 국민 1인당 한 달 라면 소비량이 6.5개인 것을 고려하면 325원 아낀 셈이다. 국민과 기업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단기적인 물가 대책보다는 국제 시세 영향을 줄이기 위한 지원과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