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과 미국에 이어 프랑스가 ‘전기차 보조금 개편’을 추진하면서 우리 정부가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최근 전기차 판매 증가세가 한풀 꺾인 상황에서 자칫 이 같은 움직임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할 경우 어렵사리 뚫어 놓은 시장을 내줘야할 판이다.
9일 산업통상자원부와 KOTRA 등에 따르면 프랑스 에너지전환부 등은 지난달 28일 전기차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에 따라 보조금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내용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안)’ 초안을 공개했다. 프랑스는 자국민의 내연기관차 사용을 줄이고 클린카 사용을 유도하고자 전기차 구매 보조금 등 다양한 지원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현재는 일정 소득 이하의 신차 구매자가 2.4톤 미만, 4만 7000유로 이하 전기차를 구매할 경우 차값(세금 포함)의 27%를 친환경 보너스 명목으로 지원받을 수 있다. 지원 한도는 인당 최대 7000유로(트럭에 한해 8000유로)까지다.
이번 개편의 골자는 기존의 차량 무게와 차값뿐만 아니라 생산, 수송·유통, 사용, 폐기 등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발자국도 따져가며 친환경 보너스를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탄소발자국 점수와 재활용 점수를 합산한 환경 점수가 최소 60점 이상인 차량을 보조금 지급 대상으로 인정하겠다는 방침이다. 탄소발자국 점수는 철강·알루미늄·배터리 등 전기차 주요 부품·소재를 생산하고 자동차를 조립·운송하는 6개 부문에 대한 지역별 탄소 배출량을 더해 산정한다.
문제는 한국산 배터리나 철강·알루미늄이 주요 유럽연합(EU) 생산품보다 더 많은 탄소를 뿜어내며 만들어진 것으로 평가됐다는 점이다. 아직 배터리 수리 가능성 등을 고려할 재활용 점수 산정 기준은 미정이지만 국내에서 생산돼 프랑스 현지에서 판매되고 있던 니로와 같은 차종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중저가 전기차 시장에서 보조금 배제 조치는 가격 경쟁력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분히 값싼 중국산 전기차를 겨냥한 조치였지만 한국 전기차도 유탄을 맞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프랑스에 1만 6570대의 전기차를 판매, 현지 전기차 시장에서 5위를 차지했다. 이 중 68.4%의 차량이 친환경 보너스 수혜를 받았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는 국내 전기차 업계와 프랑스 정부의 초안을 공유한 후 우리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분석 중이다. 이를 토대로 이달 25일까지 우리 정부 및 업계의 의견을 프랑스 정부에 제출할 예정이다.
앞서 산업부는 6월에도 역외기업에 대한 차별적 요소가 포함되지 않도록 하고 기준이 과도하게 설정되지 않도록 해달라고 프랑스 측에 요청한 바 있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기차 보조금 개편 최종안에 우리의 입장이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프랑스 정부와 지속적으로 긴밀히 협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다소 자의적인 프랑스의 전기차 보조금 개편 움직임을 경계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자국우선주의적 보조금 선별 정책의 일환으로 프랑스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라 불러도 무방하다”며 “결국 전기차 제조 공장과 소부장 기업들을 자국에 끌어들이려는 목적인데 국내 전기차 산업이 공동화되지 않도록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