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단횡단을 하던 보행자를 직접 충돌하지 않았지만, 놀라 넘어져 다치게 한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의 처벌 여부를 두고 1·2심 판단이 일부 엇갈렸다. 뺑소니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판단이 유지됐지만, 2심에서는 ‘사고 후 미조치’ 혐의가 인정돼 유죄로 판결이 뒤집힌 것이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당 사고는 지난해 1월 25일 오후 10시 30분께 서울 중구의 한 편도 3차선 도로에서 발생했다. 이 도로는 시장통으로 1차로와 3차로에 다른 차량들이 복잡하게 주차돼있었다.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주차된 차량 사이에 서 있던 피해자 B(75)씨는 차 한 대를 보낸 뒤 무단횡단하려 튀어나왔다가 후행하던 A(41)씨 차량과 마주쳤다.
A씨의 차량을 보고 놀란 B씨는 뒷걸음질하다 혼자 넘어져 오른쪽 팔뚝뼈가 부러지는 전치 10주의 부상을 입었다. 차량과 물리적 접촉은 없었다.
검찰은 해당 장소가 보행자가 자주 무단횡단을 하는 곳으로, B씨를 멀리서 발견했는데도 속도를 줄이지 않아 상해를 입게 하고 현장을 이탈했다며 뺑소니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도주치상)로 A씨를 재판에 넘겼다.
1심은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주차된 차량 사이로 갑자기 튀어나와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예상해 주의의무를 다해야 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는 B씨를 발견하고 충돌하기 전에 정차까지 했다"고 판단했다.
이어 "놀라 뒤로 넘어져 상해를 입을 것까지 A씨가 예견해 대비해야 할 주의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A씨의 업무상 주의의무 위반과 이 사고 사이에 인과 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항소하면서 뺑소니 혐의 외에 예비적 공소사실로 도로교통법상 사고 후 미조치 혐의를 추가했다. 사고 후 즉시 정차해 다친 사람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다. 이에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5-3부(정덕수 구광현 최태영 부장판사)는 추가 공소사실만 유죄로 인정해 A씨에게 벌금 50만원을 선고했다.
2심 재판부는 뺑소니 혐의에 대해선 "A씨가 제한 속도를 초과해 운전했거나 피해자 앞에서 급제동했다는 점을 입증할 자료가 없고, 제동한 지점은 피해자의 뒷걸음질 시작 지점과 약 2m 내외의 거리를 두고 있다"며 "전방과 좌우를 잘 살펴 횡단 보행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안전하게 운전해 사고를 미리 방지해야 할 업무상 주의의무를 위반했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볼 수 없다"며 무죄를 유지했다. 다만 추가 공소사실인 사고 후 미조치에 대해선 "A씨가 교통으로 인해 B씨에게 상해를 입게 하고도 구호하는 등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았던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B씨가 A씨의 차량을 피하다가 상해를 입었던 점, A씨는 차에서 내리지 않은 상태로 운전석에서 B씨와 말다툼 후 그대로 운전해 간 점 등을 고려했다"고 판시했다. A씨는 항소심의 유죄 판단에 불복해 상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