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프리즈를 보러 온 해외 컬렉터들에게 자신있게 소개할 신진작가입니다.’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갤러리 학고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이우성·지근욱 작가를 이렇게 소개했다. 8월 말부터 9월 초까지 대다수의 대형 갤러리가 프리즈를 찾는 해외 컬렉터를 위해 야심차게 준비한 전시는 최욱경, 성능경, 김구림, 요시토모 나라 등이다. 두 사람의 이름은 기라성 같은 작가들 사이에서 다소 낯선 게 사실이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작가는 각각 40세·38세로 미술계에서는 젊은 작가, 신진 작가 축에 속한다. 하지만 막상 작품을 접하면 ‘젊은 작가 육성’에 관심이 많은 학고재가 1년 중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왜 이 두 사람을 내세웠는지 고개를 끄덕일 만하다.
9월 13일까지 학고재에서 진행되는 이우성 개인전 ‘여기 앉아보세요’는 보기만 해도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되는 초상화로 가득하다. 이우성은 민중미술에서 주로 사용하던 커다란 천에 그리는 걸개그림을 현대 미술에 활용해 주목 받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친구, 가족 등 가까운 존재의 얼굴을 실제 키에 가깝게 대형 캔버스에 담아내 관람객을 압도한다.
하지만 이번 전시에서 무엇보다 관람객의 관심을 끌 만한 작품은 ‘자화상 연작’이 아닐까 한다. 외계인처럼 생긴 노란 형상은 작가 자신이다. 작가는 허리를 구부리고 마감에 쫓겨 일상을 산다. 라면을 먹고 화장실에 가고, 스마트폰을 한다. 작가는 “작업이 잘 안될 때마다 한 점씩 편하게 그린 작품”이라고 전시를 설명했는데, 다른 작품들보다도 독특하고 인상적이다.
이미 전시 개막 전에 팔려나간 작품도 있다. 수박 화채를 그린 ‘여기 앉아보세요’. 작가는 단지 “혼자 먹을 수 없고, 나눠 먹어야 하는 이 과일에서 떠오르는 기분이 좋았다”고 작품을 설명했는데, 이는 편안함과 즐거움을 좇는 MZ세대들의 삶의 태도와도 맞닿아 있다.
같은 기간 학고재에서는 같은 갤러리에서 열리는 전시가 맞나 싶을 정도로 전혀 다른 분위기의 전시가 함께 열린다. 전시의 주인공은 지근욱. 30대 후반의 젊은 나이이지만 이미 2017~2018년 크리스티 홍콩 정기 경매에서 작품이 고가에 낙찰됐을 정도로 주목받는 신예다.
지근욱의 전매 특허는 색연필 추상이다. ‘하드보일드 브리즈’라고 명명된 이번 전시에서 그는 커다란 캔버스에 자를 대고 색연필로 연속해서 선을 긋는 행위를 반복해 거대한 우주를 만들어낸 작품을 선보였다. 그는 먼저 망점을 캔버스 천에 입힌 후 이 천을 바닥에 깔고, 본인이 제작한 쇠 자를 활용해 선을 긋는 방식으로 작품을 제작한다. 모든 선의 간격이 일정한 건 아마도 선을 긋는 속도와 압력이 일정하기 때문일 것이다. 1980년대생 젊은 작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고행에 가까운 작업이다.
특히 가로 8m에 이르는 ‘교차-형태’는 15개의 캔버스가 한 벌을 이루는 대형 작품으로 화면 속에 곡선과 운율이 잘 어우러진다. 작가는 “캔버스를 누르는 나의 무게와 색연필의 압력, 쇠 자의 무게로 중력을 나타내고 싶었다”며 작품을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