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반도체 ‘초격차’ 전략 달성을 위해 우군인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의 지분 일부 매각에 나섰다. 반도체 불황으로 DS(반도체) 부문의 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미래 경쟁력 확보를 위한 실탄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이렇게 확보한 실탄으로 최첨단 반도체 생산 라인에 더욱 적극적으로 투자하면서 경쟁자들과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구상이다.
16일 삼성전자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회사는 ASML 보유 지분을 1분기 1분기 629만 7787주에서 2분기 275만 72주로 354만 7715주 줄였다. 이에 따라 삼성전자의 ASML 지분율은 1.6%에서 0.7%로 감소하게 됐다. 지분에 대한 장부금액(시장가치)은 5조 5970억 원에서 2조 6010억 원으로 낮아졌다.
최근 주가를 감안하면 삼성전자는 ASML 주식 매각을 통해 약 3조 원 안팎의 현금을 손에 쥐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ASML 외에도 2분기에 중국의 전기차 업체 비야디 주식 238만 주(0.1%), 국내 종합장비회사 에스에프에이(SFA) 154만 4000주도 각각 처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통해 약 1500억 원 가량의 투자 여력을 확보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삼성전자는 이번 매각으로 투자 대비 상당한 차익을 거뒀다. 회사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과 전략적 협업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2012년 이 회사 지분 3.0%(1259만 5575주)를 7000억 원 가량(5억 300만 유로)에 매입했다. 이후 2016년에 투자비 회수 차원에서 보유 지분의 절반 가량을 6000억 원 가량에 매각했다.
삼성전자가 보유한 ASML의 지분 가치는 이후 훌쩍 높아졌다. EUV 장비를 독점하면서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슈퍼 을(乙)’로 통한 ASML의 몸값이 그새 크게 오른 덕분이다.
삼성전자는 주식 처분을 통해 확보한 자금을 최첨단 반도체 라인 건설에 투자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경기 평택,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시 등에 대대적인 최첨단 반도체 생산라인을 구축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로 예상되는 반도체 업황 반등 시점에 대비해 선제적인 시설 투자에 나서 경쟁자들과의 기술 격차를 더 벌려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지분 매각을 비롯해 투자 여력 확보 차원에서 다방면의 재원 마련 계획을 실행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실적에 직면한 가운데서도 미래 대비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는 판단 아래 선제적인 투자에 나서기 위해서다.
삼성전자는 상반기에 배당금 수입으로 22조 1601억 원을 벌어들였다. 1분기 8조 4398억 원, 2분기 13조 4059억 원 등이다. 지난해 상반기 1378억 원과 비교해 160배나 늘어난 규모다.
이는 회사의 미국, 베트남 등 해외 법인의 이익 잉여금이 배당금 형태로 들어온 것이다.
삼성전자는 2월 자회사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20조 원을 단기 차입하기도 했다.
이렇게 들여온 배당금 대부분은 설비 투자에 사용된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전자는 올해 상반기에 역대 최대 규모인 25조 3000억 원의 설비투자를 단행했다. 연구·개발(R&D)에도 14조 원을 투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적극적인 선제 투자로 중장기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