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덫' 갇힌 하와이 주민들…"불길 속 대피로는 오직 하나"

버려진 차량. 사진=AP·연합뉴스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로 사망자가 100명을 넘어선 가운데, 주민들이 '죽음의 덫'에 갇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두고 책임론이 불거지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산불이 발생한 당시 라하이나에서 외부 지역으로 대피할 수 있는 도로가 거의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고 보도했다. 대피 경보와 도로 통제 등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아 제때 빠져나가지 못한 주민들이 희생됐다는 설명이다.


지난 8일 하와이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은 한 차례 진압에 성공했다고 보고된 바 있다. 목격자 인터뷰와 영상, 위성 사진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37분께 라하이나의 끊어진 송전선 하나가 건조한 풀밭에 떨어지면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다. 당시 소방대원은 바로 진화 작업에 돌입했고, 마우이섬 카운티 당국은 오전 9시께 화재가 100% 진압됐다고 밝혔다.


그러나 얼마 안 가 카운티 당국은 라하이나 산불이 다시 확산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남은 불씨가 순식간에 대형 산불로 번지며 라하이나를 집어삼킨 건 고작 9시간 만이었다.


산과 해안 사이에 가로막힌 라하이나 지역과 주변부를 연결하는 도로는 크게 3개다. 해안도로인 '프론트스트릿'과 도시를 관통해 지나는 '고속도로', 그리고 2013년 주민들의 청원으로 건설된 '우회도로'다. 주민들과 관광객들은 이 도로를 통해 불길을 피해야 했다.


당국은 번지는 불길을 막기 위해 도로 통제에 나섰다. 오후 3시 30분에는 '우회도로'를 차단하고, 3시 45분에는 라하이나 중심지와 고속도로를 잇는 도로마저 폐쇄했다. 화재 위험을 막기 위한 결정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주민들의 대피로는 '프론트스트릿' 하나밖에 남지 않게 됐다.



전선에서 시작된 불꽃. 사진=AP·연합뉴스

이런 와중에 산불 대피를 알리는 경보도 제대로 울리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라하이나 쇼어스비치 리조트를 찾은 관광객들은 산불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듣지 못하다 오후 4시 17분이 돼서야 처음 대피 경보를 받았다. 여전히 상황을 모른 채 수영을 즐기러 이동하는 일부 관광객도 있었다.


미숙한 도로 통제와 뒤늦은 대피 경보로 주민과 관광객의 대피가 어려워졌다. 오후 5시 30분께 라하이나 중부에서 대피하던 한 50대 남성은 고속도로 진입을 시도했지만 이미 폐쇄된 상태였다. 그는 결국 유일한 출구인 '프론트스트릿'으로 향했지만 이미 수많은 차량이 몰려들면서 정체되고 있었다.


오후 6시, 그가 치솟는 화염을 뒤로 하고 아슬아슬하게 탈출에 성공했을 때 프론트스트릿은 이미 연기에 갇혀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스쿠터를 타고 대피한 한 주민은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지만 토하고 비명을 지르는 소리는 들렸다"고 당시 아비규환의 상황을 전했다.


한편 워싱턴포스트(WP)는 이번 산불 원인이 전력 시스템의 결함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와 관련 일부 라하이나 주민들은 전력회사인 하와이안 일렉트릭 인더스트리와 그 자회사에 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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