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충전난민 양산하는 정부

산업부 김기혁기자



요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승용차가 아닌 트럭이 충전기를 독차지하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보인다. 전기 트럭은 주행거리가 짧은 데다 충전 속도가 느린 탓에 충전소에서 오랜 시간 자리를 차지한다. 장거리 주행을 남겨두고 배터리가 바닥난 다른 전기차 차주로서는 기약 없이 충전이 끝나기를 기다리거나 다른 휴게소까지 운전할 수밖에 없다. ‘충전 난민’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다.


전기 트럭이 급증한 데는 정부의 보조금 정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 트럭·밴 등 전기 화물차에 지급되는 국고보조금이 전기 승용차의 두 배 수준에 달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기 화물차와 전기 승용차에 각각 최대 1200만 원, 680만 원을 지급한다. 여기에 지자체가 전기 트럭을 구매하는 소상공인에게 주는 추가 지원금 등을 더하면 2000만 원 수준의 보조금 수령이 가능하다. 정부가 화물차 위주로 전기차 보조금을 몰아준 탓에 각 지자체에서는 전기 화물차에 배정된 보조금 예산만 금세 동나기 일쑤다. 반면 승용차에 줄 예산은 남아도는 곳이 적지 않다.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중국 진출의 발판으로 작용했다는 지적도 잇따른다. 중국 업체들이 전기 화물차에 지급되는 막대한 보조금을 노리고 연달아 진출했다는 것이다. 중국 최대의 민영 자동차 회사인 지리그룹은 지난달 전기 밴을 선보였다. 판매 홈페이지에서는 지자체 보조금을 합쳐 최저 1270만 원에 구매가 가능하다는 안내가 올라와 있다. 세계 최대의 친환경차 기업으로 발돋움한 비야디(BYD)도 올해 들어 전기 트럭을 론칭했다. 중국에서 생산된 전기차도 차별 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어 중국산 전기 화물차가 국내 시장을 잠식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이미 수년 전 한국에 상륙한 중국산 전기 버스는 올해 40% 이상의 점유율을 차지했다.


미세 먼지의 주요 배출원 중 하나인 경유 트럭을 친환경차로 전환해야 한다는 정부의 정책 취지에는 공감한다. 하지만 전기차 보조금 정책이 국내 산업 육성과 인프라 여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잇따르는 게 사실이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은 해외 진출을 본격화한 중국계 업체와 테슬라의 공세로 급변하고 있다. 우리 정부도 환경친화적인 관점에서 시각을 확장해 국내 완성차 생태계에 힘을 실어주는 전기차 정책을 마련하기를 기대해본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