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PU값 폭등에 슈퍼컴 6호기 예산 부족… 기술경쟁력 저하 불가피

“전략 자산인 과학 기술은 글로벌 패권 경쟁 한 복판에 있습니다. 규모의 경쟁과 속도의 싸움이 벌어지는 시대에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이 시급하지만 인공지능(AI) 대변혁에 따른 그래픽처리장치(GPU) 가격 폭등과 금리 인상·고환율이라는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18일 서울 광화문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 기자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윤민혁 기자

김재수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은 18일 서울 광화문 HJ비즈니스센터에서 열린 슈퍼컴퓨터 6호기 도입 기자간담회에서 “어려운 시장상황에 역대 도입 사례 중 최악의 환경에 처해 있지만 어떻게든 2024년 말 서비스 목표로 슈퍼컴 6호기 도입을 성사시키겠다”고 강조했다.


슈퍼컴 6호기는 2018년 도입한 5호기 ‘누리온’의 뒤를 잇는 초고성능컴퓨터다. 슈퍼컴은 국가간 기술 경쟁의 핵심 인프라다. 미국·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선진국들은 초고성능 슈퍼컴 확보를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다. 기술 발전이 빨라 도입 시점 세계 최고 성능 슈퍼컴도 5년가량이 지난 후에는 평범한 수준이 된다. 실제 2018년 12월 도입 당시 세계 11위권 성능을 자랑하던 5호기 누리온은 올 상반기 기준 49위를 기록했다. 국내 순위도 7위에 불과하다.


이에 현재 6호기 도입을 위한 입찰이 진행중이지만 2차례 유찰을 겪고 있다.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한 슈퍼컴 6호기의 목표 성능은 600페타플롭스(PF·1초당 1000조 회 연산) 이상으로 기존 누리온의 25.7페타플롭스보다 23배 이상 빠르다. 이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앙처리장치(CPU) 만이 아닌 GPU 탑재가 필수지만 챗GPT 등 생성형 AI 열풍에 GPU 가격이 폭등하며 당초 계획보다 예산이 부족해졌다.


슈퍼컴 6호기를 위한 총 예산은 2929억원으로 ‘몸체’인 서버 입찰 가격은 1억4564만달러(약 2000억원)다. 당초 KISTI는 누리온을 개발한 크레이(HPE)와 레노버, 아토스 등의 입찰을 기대했지만 지난 8일까지 진행한 2번째 입찰에서도 사업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KISTI 관계자는 “과거 3호기·5호기 도입 당시에도 몇차례 유찰이 있었지만 현재는 엔비디아 A100 등 GPU가 주문 후 수령까지 52주가 소요되는 등 수급 상황이 매우 나쁘다”며 “사업자를 찾는다 하더라도 현재까지 유찰 상황만으로 도입과 서비스 시작 지연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기존 슈퍼컴 5호기를 업그레이드하는 방안도 여의치 않다. 슈퍼컴 6호기는 전체 성능 97%가량을 GPU에서 끌어낼 계획인데, 5호기 누리온은 CPU 기반 슈퍼컴인 탓이다. 당초 목표한 성능의 신형 슈퍼컴 도입을 위해서는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하지만 예타 통과 기간을 감안할 때 국가 과학기술 경쟁력 악화를 피할 수 없는 실정이다.


현실적인 대안은 CPU·GPU 등 핵심 연산 칩셋을 제외한 곳에서 성능을 포기하는 것이다. GPU계 ‘표준’인 엔비디아 칩셋 외 AMD 등 경쟁사 칩셋을 사용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실제 현 시점 세계 1위 슈퍼컴인 미국 오크리지 국립연구소의 ‘프론티어’는 AMD CPU·GPU를 사용 중이기도 하다. KISTI 관계자는 “저장장치·메모리·주변장치 등을 포기해 예산을 맞춰나갈 계획”이라며 “목표 성능만 나온다면 반드시 한 업체(엔비디아) 칩셋만을 고집할 생각은 없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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