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내년도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을 줄이면서 산하 25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의 근심이 커지는 모습이다. 주요 사업 예산이 올해보다 10% 줄었을 뿐 아니라 이 예산을 들고 직접 R&D 구조 조정을 단행하고 이에 따른 연구 현장의 반발까지 감내해야 하는 부담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과기정통부는 22일 ‘내년도 국가 R&D 예산 배분·조정 결과’를 발표하며 내년도 출연연의 ‘주요 사업' 예산과 인건비, 운영비를 합친 ‘출연금’을 올해 대비 10.8% 축소된 2조 1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과기정통부의 전체 주요 R&D 예산의 감소율(13.9%)보다는 낮지만 연구 사업 10개 중 1개꼴로 구조 조정해야 하는 만큼 출연연 내부에서는 ‘전례 없는 대규모 예산 삭감’ 사태로 받아들이고 있다. 주요 사업 예산만 따지면 기관 대부분 20%대 삭감이다.
게다가 출연연은 이 예산안으로 직접 연구자와 연구 사업에 대한 구조 조정을 해야 하는 ‘총대’를 메게 됐다. 과기정통부는 출연연별로 주요 사업 예산을 자율적으로 집행하도록 해왔지만 올해를 기점으로 새로 바뀐 정부의 R&D 투자 기조를 따르지 않으면 기관 평가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이날 과기정통부가 발표한 R&D 혁신 방안은 ‘하위 20% 사업의 구조조정 방침’ 등 아직 출연연 포함 ‘기관 사업’이 아닌 ‘부처 사업’에 적용되는 내용이 많다. 이에 한 출연연 관계자는 “구조 조정 과정에서 연구자들의 반발 등 현장의 혼란이 불가피해졌다”며 “증액된 예산을 편성해온 지금까지와 감액된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 지금의 기준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차라리 정부가 관련해서 조금 더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라도 제시해주면 좋겠지만 그런 게 없다 보니 기관 입장에서는 부담이 더 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른 출연연 관계자도 “어느 사업부터 줄여야 할지, 줄인다면 연구 인프라를 줄일지 인건비를 줄일지 등을 기관이 자체적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런 가이드라인은 없다”며 “(구조 조정의 책임이) 우리 쪽에 있어 걱정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전했다. 통상 과기정통부와 기획재정부를 거쳐 내년도 R&D 예산안이 어느 정도 정해지면 출연연들은 10월께부터 자체적으로 과제들에 예산을 배분해 사업 계획을 세우고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가 이를 승인한다. 하지만 예년과 달리 내년도 사업 계획 수립은 대규모 구조 조정이 포함된 만큼 보다 구체적인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후속으로 나와야 하는데 이날 ‘카르텔 타파’ 등을 골자로 발표된 R&D 혁신 방안은 가이드라인 역할을 하기에 부족하다는 것이 이들의 의견이다.
과기정통부의 한 고위급 관계자는 “예산을 어느 과제부터 줄여야 할지는 기관 스스로가 가장 잘 아는 만큼 쉽지 않겠지만 기관이 고민해서 예산을 효율적으로 재분배해달라”며 구조 조정에 대한 출연연의 책임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성과가 낮거나 민간의 역량을 고려해 굳이 출연연이 하지 않아도 되는 과제를 골라내는 식으로 출연연의 고민이 있어야 할 것”이라면서도 “출연연들을 더 발전시켜나가기 위한 방안들을 출연연들과 논의해나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