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부인과 의사들 사이에서 분만 기피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최근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12억원 가량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오면서 분만을 하지 않으려는 병원이 늘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2일 의료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5월 수원지방법원 평택지원 재판부는 뇌성마비로 태어난 신생아의 분만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가 신생아와 그 부모에게 12억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유도분만을 하루 앞둔 임신부가 태동이 약하다고 증상을 말했지만, 의사가 바로 진료하지 않고 상태 관찰을 소홀히 해 신생아의 장애 발생에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번 판결에 대해 산부인과 의료계는 술렁이고 있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이 판결 이후 성명서를 내고 “불가항력적인 의료사고에 대해 최선을 다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너무 가혹한 판결”이라며 “분만의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산부인과 의사들이 더 견뎌야 할 이유가 사라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산부인과 의사들이 이번 판결을 큰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상급심에서는 법원이 공정하고 현명하게 판단해 달라”고 촉구했다.
산부인과학회도 최근 설명을 통해 “분만이라는 의료행위에는 본질적으로 내재된 위험성이 있어 산모나 태아의 사망 혹은 신생아 뇌성마비 등 환자가 원치 않던 나쁜 결과가 일정 비율로 발생하는 것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세계 의학계의 지적”이라며 “태아의 이상을 발견한 즉시 의료인이 선의의 의료행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가 나쁘다는 이유만으로 산부인과 의사에게 거액의 배상책임을 묻고 가혹하게 처벌하는 것은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을 위축시키고 사기를 저하한다”고 반발했다.
앞으로 분만을 맡지 않겠다는 의료진도 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한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 수가가 50만원밖에 안 되는데 위험도가 높아져 조만간 분만실을 정리하겠다는 의사들이 많다”면서 “산부인과 동기 8명 중 현재 분만을 담당하는 의사는 나 포함 3명인데 리스크가 커져 분만을 맡지 않겠다는 의사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의료계에서는 국가가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 책임지고 수가를 높여야 한다고 보고 있다. 현재는 무과실 분만 의료사고에 대해서만 최대 3000만원 한도(국가 70%, 분만 의료기관 30%)로 보상하고 있다.
오는 12월부터는 관련법 개정으로 국가가 100% 보상하는 것으로 바뀌지만 한도는 여전히 3000만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