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4050 세대를 위한 패션 플랫폼은 없을까?”
2020년 초 온라인 패션 유통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다다른 것처럼 보였다. 롯데·신세계·현대백화점 등 전통 오프라인 유통 대기업은 온라인 유통을 강화하는 추세였고 LF·코오롱 등 패션 대기업들도 앞다퉈 자체 플랫폼을 구축했다.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 같은 대형 온라인 유통 플랫폼 역시 성장 추세였다. 온라인 패션 유통시장은 더이상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는 레드오션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었지만 최희민·홍주영 라포랩스 대표에게는 블루오션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모든 패션 플랫폼이 2030세대를 주 고객층으로 바라볼 때 이들은 4050세대 패션 시장에 시선을 돌렸다. 국내에는 약 1300만 명의 X세대(1970년대생)가 있지만 이들을 위한 플랫폼은 전무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X세대를 한 플랫폼 안에 끌어들여 ‘록 인(Lock-in·묶어두다)’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 앞섰다.
두 창업자의 사업적 선구안은 정확했다. 라포랩스가 그해 8월 출시한 X세대 패션 플랫폼 ‘퀸잇’은 가파르게, 어떻게 보면 ‘무섭게’ 성장했다. 출시 약 2년 반 만인 지난해 12월 누적 거래 금액 2000억 원을 돌파했다. 올 7월 기준 누적 앱 다운로드 수 560만 건, 월간활성이용자(MAU) 수 200만 명, 입점 브랜드 수 900개를 기록했다. 투자 유치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이달 종료한 시리즈B2 라운드 투자 유치 금액은 340억 원. 소프트뱅크벤처스, 에이티넘인베스트먼트, 카카오벤처스, 알토스벤처스, 액시옴아시아프라이빗캐피털 등 유수 투자 기관이 지분을 샀다. 기업 가치는 약 4000억 원으로 추산된다.
라포랩스는 설립 초기부터 여성 고객을 정조준했다. 남성보다는 여성이 패션 소비를 더 많이 하고 트렌드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생각에서다. 문제는 오프라인 소비에 익숙한 4050 여성을 온라인 소비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끌어오느냐 였다. 라포랩스는 우선 타겟 고객층이 온라인으로 패션을 소비할 의향이 있는지를 조사했다. 조사 결과 두 창업자가 내린 결론은 4050 여성만을 위한 패션 플랫폼이 충분히 승산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X세대는 예상보다 디지털 기기 활용에 익숙했고, 자신들만을 위한 플랫폼도 원하고 있었다. 최 대표는 “4050 세대 공략을 타겟으로 잡고 플랫폼 출시 이전 중장년층 300명을 일일이 인터뷰했다”며 “그 결과 4050 세대는 디지털 친숙도가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과 4050 세대 버전의 무신사, 지그재그, 에이블리을 원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퀸잇 플랫폼은 출시 이후 주문을 처리하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거래액은 매 달 두 배 수준으로 늘어났다. 잠재 수요가 있던 블루오션을 정확히 타겟팅한 서비스를 내놓자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것이다. 오프라인 소비를 위축시킨 코로나19도 라포랩스 성장에 영향을 줬다. 각종 거리두기 조치로 오프라인 소비가 번거로워진 소비자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찾게 되자 상당수 패션 브랜드들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자사 제품을 유통할 수밖에 없게 됐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온라인 패션 플랫폼의 성공 조건으로 △상품 다양성 △가격 △구매·반품 편리성 등을 꼽는다. 그는 현재 퀸잇이 이 세 조건을 지금 모두 충족하고 있다고 봤다. 퀸잇에는 900개가 넘는 패션 브랜드가 입점해 있어 소비자들의 다양한 취향을 충족시킬 수 있다. 오프라인 매장 임대료가 없어 가격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 절반 이상의 상품은 무료로 반품을 해준다.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퀸잇은 매달 200만 명이 최소 한 번은 방문해보는 플랫폼이 됐다.
플랫폼 사업은 한번 사용자를 끌어모으면 좀처럼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운영하는 메타가 그렇고 국내에서는 네이버, 카카오가 그렇다. 패션 플랫폼에게 있어 많은 사용자 수를 가진다는 것은 더 많은 패션 브랜드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브랜드는 플랫폼 크기가 클수록 신상품 출시를 먼저 하는 등 플랫폼 운영사에 혜택을 준다. 국내에서 4050 여성을 주 타겟으로 하면서 매달 수 백만 명이 이용하는 플랫폼은 퀸잇이 유일하다. 다른 패션 유통 기업이 뛰어들어도 쉽게 성공을 거두기 쉽지 않은 퀸잇만의 영역을 구축했다는 평가다.
라포랩스는 급격한 성장 보다는 내실을 다진다는 방침이다. 당장 타겟 고객층을 넓히거나 패션 브랜드를 자체적으로 키우는 것보다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더 잘 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퀸잇 플랫폼의 MAU는 200만 명이지만 이들 모두가 매달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국내에 있는 45세~55세 여성 수는 약 780만 명. 이들 절반을 플랫폼 안으로 끌어들이고 구매율도 높이는 것이 라포랩스의 목표다. 최 대표는 “당분간은 타겟 고객층을 유지한 채 서비스 품질을 높이는 데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력 채용도 보수적으로 하고 있다. 직원을 빠르게 늘리면 사내 조직이 흔들릴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보통 급격히 성장하는 스타트업은 인력 채용을 공격적으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신구 직원 간 갈등 등 진통을 겪는다. 라포랩스는 약 150명 수준의 직원을 꾸준히 유지하면서 인력이 부족한 부분은 사내 개발 조직을 활용해 자동화하고 있다.
2021년 106억 원을기록한 라포랩스의 매출액은 지난해 185억 원으로 뛰어 올랐다. 올해 3월과 5월에는 월간 흑자를 기록하기도 했다. 비용 절감을 통해 거둔 흑자가 아니라 거래 금액이 늘어 기록한 영업이익이라는 점이 주목 받고 있다. 라포랩스는 퀸잇 플랫폼 내 상품 거래액의 1.5%를 수수료로 받아 매출을 발생시킨다. 최 대표는 “사무실 임대료나 인건비, 마케팅 비용을 줄여 흑자를 기록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서비스 품질을 높이기 위해 투자를 지속하고 있다”며 “지금 성장세를 유지하기 위해 더 내실을 다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