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도기간 일주일 남기고 '비대면진료' 법제화 또 불발…해 넘기나

보건복지위 24일 제1법안심사소위에서 의료법 개정안 논의
3월·6월 이어 3차례 국회 문턱에서 좌절…연내 어렵다는 전망도

박민숙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부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열린 노동·시민·환자단체, 비대면 진료 법제화 중단 요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달 말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종료되는 비대면진료 법제화 논의가 또다시 가로 막혔다. 처방전 위변조, 의약품 오남용 등 시범사업 과정에서 드러난 허점을 보완할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다. 다음 달 법안소위가 열릴지 기약하기 힘든 가운데 10월부터 국정감사, 예산 심의가 줄줄이 이어지는 만큼 연내 의료법 개정안 처리가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4일 국회에 따르면 보건복지위원회는 이날 제1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비대면진료 법제화를 담은 의료법 개정안을 논의했지만, 보류(계속심사) 판정을 내렸다. 올 3월과 6월에 이어 총 3차례 법제화 논의가 이뤄졌지만 법안소위의 문턱을 넘지 못한 것이다.


비대면진료 제도화 및 플랫폼 관리 규제 관련 국회에 발의된 의료법 개정안은 더불어민주당 강병원·신현영·최혜영 의원안, 국민의 힘 이종성·김성원 의원안 등 총 5건이었다. 이날 보건복지위는 기존에 발의된 의원안 5건 외에도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토대로 만든 정부안을 병합 심사했다. 지난 6월부터 3개월에 걸쳐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이 시행된 데다 계도기간 종료가 일주일 앞으로 다가온 터라 이날 법안소위 결과는 다소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여야 모두 비대면진료 법제화 필요성에 공감했지만 비대면진료를 제도화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부작용들에 대한 대책이 법안에서 빠졌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별다른 진전 없이 마무리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약사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전혜숙 의원은 비대면진료 후 PDF 형태로 발급되는 전자처방전을 여러 약국에 가져가 대량으로 처방받거나 처방전을 돌려쓰는 등의 부작용을 문제 삼으면서 강력 반대 의사를 표명하고 나섰다. 재진 위주의 현재 시범사업 안을 뒤엎고, 섬벽지 거주자나 거동 불편자 대상으로만 비대면진료를 허용하는 내용의 법안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고도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밖에도 야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재진 여부를 구분하기 어렵고, 의료기관별 비대면진료 비율을 30%로 제한하기 어렵다는 등의 의견이 이어져 제도화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국정감사를 한달 남짓 남겨둔 가운데 11월 예산 심의, 내년 총선까지 이어지다 보니 법제화 시기를 예상하기 쉽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다.



원격의료산업협의회 회원들이 24일 오전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발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안 재검토를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를 계기로 급물살을 탄 비대면진료 법제화 논의가 차일피일 미뤄지는 동안 플랫폼 업체들은 벼랑 끝에 몰렸다. 초진(첫 진료) 환자를 제한하는 시범사업이 시행된 3개월 남짓 동안 사업을 접는 업체들도 속출했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에는 과거 진료를 받은 적이 없는 병원이라도 비대면으로 진료를 받고 약을 배송받을 수 있었다. 반면 시범사업은 극히 예외적 초진 환자만 비대면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명시했을 뿐, 기본적으로 진료를 받은 병원에서만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다. 약 배송도 금지돼 약국에 직접 방문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민간 플랫폼에 비대면진료 중개를 맡기면 건강보험재정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필요하다면 공공플랫폼을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등장했다.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와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 한국루게릭연맹회, 한국폐섬유화환우회, 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등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지난 22일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플랫폼들이 영리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잉진료가 늘고 의료비가 오르면 영리병원을 도입한 것과 같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며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려면 사기업이 아닌 공공플랫폼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날 국회에서도 비대면진료 중개 플랫폼 업체를 통제할 수단이 없다며 공공플랫폼 도입을 요구하는 의원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플랫폼 업계에서는 법제화 시점을 기약하기 힘든 가운데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계도기간마저 종료되면 사업을 접는 플랫폼업체가 더욱 늘어날 것이란 하소연이 나온다. 한 플랫폼 업체 관계자는 “비대면진료 자체만으로는 더이상 사업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당장 시범사업 계도기간이 끝나는 31일 이후부터 업계에서 사업 종료나 전환 선언이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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