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대한민국"…그들은 제대로 '기억'되고 있을까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연합뉴스

서울시가 지난 15일 공영주차장 등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조성하는 조례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앞서 국가보훈부가 서울시와 지방자치단체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 설치를 제안한 데 따른 조치다.


조례가 통과되면 시는 예산 1억 7500만원을 들여 주차장에서 출입구, 승강기와 가까운 곳에 국가유공자 우선 주차구역을 설치해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국가유공자 주차구역 실효성에 대한 지적의 목소리가 나온다. 국가에 헌신한 유공자를 예우한다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서울의 극심한 주차난을 더 가중시킬 것이란 우려다. 뿐만 아니라 장애인 주차구역 등과 같이 위반 시 제재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는 점도 도마에 올랐다.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 대한민국’.


윤석열 정부가 국가보훈부의 승격을 발표하며 내건 표어다. 국가유공자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이 과연 ‘주차구역’일까. 영웅은 잘 ‘기억’되고 있는걸까.


지난 6월 23일 부산 금정구의 한 마트에서 6.25 참전용사가 7차례에 걸쳐 8만 3000원어치의 식료품을 훔쳐 경찰에 붙잡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이 경미한데다 국가 유공 등을 참작해 즉결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참전 용사 A씨가 훔친 식료품은 참기름과 젓갈, 참치캔과 같은 품목이었다. 치아가 약한 A씨가 미역국을 끓여먹기 위한 재료들이었다고 한다. 그는 6·25 마지막 해인 1953년 참전했던 국가 유공자였다. 제대 이후 30여년 간 선원으로 일하며 가정을 꾸린 그는 자녀들이 독립하고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자 단칸방에서 홀로 지냈다. 생활비는 정부와 지자체에서 매달 받는 참전 유공자 지원금 약 60만원으로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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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이 알려지자 전국 곳곳에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부산 진경찰서 게시판에는 후원 문의가 잇따랐고, 직접 쓴 편지와 생필품을 들고 찾아온 청년의 사연도 전해졌다. 부산진경찰서 형사 2팀은 “경찰서로 전달된 물품들은 직접 전달했으며 부산보훈청에 협조를 요청해 부산 진구 내 거주하는 국가유공자 중 80세이상의 독거노인 15가구를 방문했다”고 말했다.


개인의 후원 문의는 부산보훈청으로 연결됐다. 김종순 부산보훈청 대변인은 서울경제신문 인턴기자와의 통화에서 “기부금은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하여 대상자에게 전달되고 있으며, 후원물품은 대상자의 개인정보보호를 위해 보훈청에서 물품을 받아 직접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참전용사에 대한 지원이 어떻게 이뤄졌냐는 질문에는 “참전용사 A씨에 대해 기초생활수급자 신청 완료했고 매주 참전유공자분댁을 찾아가 안부확인과 청소 등 가사 및 반찬을 지원하고 있다”며 “지자체 기초생활수급자 결정 시 기초생계비 및 보훈청 참전유공자 생계지원비 등 지원할 예정”이라고 했다.


국가를 위해 청춘을 바쳤던 참전용사들이 생계형 범죄를 저지를 정도로 생활고에 시달리는 이유는 뭘까. 현저하게 적은 참전명예수당이 가장 먼저 꼽힌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2003년 5월부터 65세 이상의 참전유공자에게 참전명예수당(2023년 기준 월39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이던 2021년 12월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국가 유공자의 수당을 35만 원에서 70만 원까지 2배 인상하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기획재정부는 현실적 요건을 고려하여 지난해 8월 참전명예수당을 윤석열 정부 5년 동안 매년 점진적으로 50만 원까지 올리겠다고 공약을 수정했다. 문제는 올린 수당조차도 여전히 2023년 기준 1인 가구 최저생계비 124만원에 반도 못 미치는 액수라는 점이다.



참전명예수당 인상 계획. 국가보훈부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명예참전수당과는 별도로지방자치단체가 추가 지급하는 참전수당이다. 지자체가 지급하고 있는 참전수당은 지역별 실정에 따라 지급액이 크게 차이가 난다. 그러다보니 지급액이 낮은 지자체의 참전유공자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고 있다. 17개 광역 단체 모두 참전수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전체 광역 단체 지급액 평균은 9만2000원이다.



지자체 '참전수당' 예산 비중. 국가보훈부

기초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여건에 따라 참전수당을 지급하고 있어 참전유공자들이 실제 지자체로부터 받고 있는 참전수당의 총액은 광역 내에서도 차이가 있다.


기초자치단체에서 지급하는 액수를 합산해 계산하면 가장 많은 액수를 지급하는 곳은 강원도 화천으로 46만 원이다. 강원도가 월 6만 원, 화천군이 월 40만 원을 지급한다. 가장 적은 곳은 전북 익산·전주로 참전유공자는 한 달에 8만 원(도 2만 원+지자체 6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강원 화천과 전북 익산·전주의 참전명예수당 금액 차이는 월 38만 원이다. 익산·전주에 거주하는 참전유공자는 화천에 거주하는 사람에 비해 1년에 456만 원을 덜 받는다.


이에 대해 오제훈 국가보훈부 대변인실 홍보담당관은 “지자체 보훈수당은 지자체 자체수입으로 수행하는 자치사무로, 각 지자체 실정에 따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사항"이라며 "중앙정부 차원에서 지급액을 강제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실정”이라고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보훈부에서는) 중앙-지방정책협의회 안건 상정, 광역 단체 지급액 현황 자료 배포 등을 통해 지자체 수당 격차 완화를 위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며 “향후 ‘인근 지역의 평균’을 고려해 지급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의 가이드라인 배포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보훈처가 지난해 발표한 ‘2021년 국가보훈대상자 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보훈대상자 가구의 소득계층별 규모를 시장소득을 적용해 추정한 결과 전체의 46.3%인 30만7970명이 중위소득 30% 미만의 빈곤층인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보훈 위상 강화를 내걸고 국가보훈처를 국가보훈부로 승격시키는 한편 보훈예산도 6조원으로 인상된만큼 국가유공자를 향한 경제적 지원 강화, 일자리 지원 정책 마련 등이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각에서는 6조원 보훈 예산도 부족하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고의 보훈 수준을 자랑하는 미국의 제대군인부는 국방부에 이어 연방정부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를 가진 기관이다. 2022년 기준 미국 제대군인부 보훈 예산은 약 344조 원으로 정부 예산의 4.6%를 차지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3년 예산 638조 7000억원 가운데 보훈부 예산은 약 6조 2000억으로 전체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우리나라와 비교할 때 대상자가 절반에도 못미치는 캐나다가 미국과 비슷한 예산 수준이다. 대상자가 한국의 5분의 1 수준인 호주는 우리보다 38% 많다.



국가별 보훈 현황 비교. 국가보훈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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