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100세 현역 키신저가 말하는 '이기는 외교'의 비결

■헨리 키신저의 외교(헨리 키신저 지음, 김앤김북스 펴냄)
17세기 유럽서 냉전 해체까지
세계 변화 이끈 외교정책 분석
보편적 가치 기반한 '윌슨주의'
세력균형 현실정치와 결합해야
한쪽으로 쏠림땐 분쟁·갈등 불러


1994년 출간된 헨리 키신저의 책 ‘Diplomacy’가 이번에 ‘헨리 키신저의 외교’라는 이름으로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올해 100세인 헨리 키시저는 미국 외교의 전설이자 여전한 현역이다. 책이 나온 것은 구소련이 무너지고 냉전 체제가 와해된 직후였다. 30년 전에 쓰여졌지만 한 세대 이전에 집필한 책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현재에도 많은 시사점을 준다.


당시 많은 사람들은 적대적 체제가 사라지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세계적 보편성을 획득할 것으로 기대했다. 물론 지금 모두가 아는 것처럼 그런 희망이 현실화하기는 그렇게 쉽지 않았다. 테러와의 전쟁, 중동 분쟁, 그리고 현재 신냉전이라고 불리는 미중 대립까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책에서 헨리 키신저는 ‘외교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17세기 유럽부터 20세기 말 냉전 해체까지 외교의 역사를 풀이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관점에서다. 그는 어떻게 이상주의적인 미국 외교가 실패하지 않고 미국 우위의 국제 체제를 구축할 것인지 제시하고 있다. 한국인인 우리로서는 키신저가 강대국 외교에 치중하면서 한국 등 상대적인 약소국은 주변으로 처리했다는 불만이 없지는 않다.


키신저는 성공한 외교를 위해서는 보편적 가치라는 이상에 기반한 윌슨주의가 국익과 세력 균형에 기반한 현실 정치와 결합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키신저는 “윌슨주의적 동기와 현실정치적 동기가 불일치할 때 미국 외교는 곤경에 처했고 양자가 일치할 때는 실패하는 일이 없었다”고 말한다.


세부적으로 책은 유럽에서 30년전쟁을 통한 베스트팔렌 조약(1648년) 체제로부터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빈 체제, 독일 통일 이후의 비스마르크 체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베르사유 체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냉전 체제, 그리고 탈냉전 질서에 이르기까지 국제 체제의 주요 변화들을 만들어낸 강대국의 외교 정책을 분석한다.


“어떤 자연 법칙에 따르기라도 한 듯 모든 세기에는 권력과 의지, 지적·도덕적 추진력을 갖추고 국제 체제 전체를 자신의 가치에 따라 형성하는 국가가 등장하는 것처럼 보인다.” 17세기에는 프랑스의 재상 리슐리외의 국가이성이, 18세기에는 영국이 주도한 세력균형의 개념이, 19세기에는 오스트리아의 재상 메테르니히의 협조정신이 그 주인공이었다. 메테르니히의 협조체제를 깨뜨린 것은 독일 철혈 재상 비스마르크의 권력정치였고 그 권력정치의 비극적 결과가 근대와 현대를 가른 제1차 세계대전이었다.



연합뉴스

미국 외교의 시대는 이후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세계 전쟁에 참전해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미국은 우드로우 윌슨 대통령의 주도 아래 기존 세력균형과 권력정치에 기반한 유럽의 구질서를 부정하고 민주주의와 국제법, 집단 안보에 기반한 새로운 세계 질서를 제시했다. 다만 윌슨주의는 지나친 이상주의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미국을 다시 고립으로 회귀하게 만들었고 이는 제2차 세계대전으로 비화되는 주요한 동기가 됐다. 키신저가 이 책에서 윌슨주의와 현실정치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미국은 전세계가 민주주의에 전념하는 방향으로 도덕적 컨센서스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동시에 세력균형도 등한시 해서는 안된다.”


책에서는 마지막 부분에 중국에 대한 시사점도 제시돼 있다. “중국과 우호적인 관계 뿐만 아니라 중국에 안보적 위협으로 인식되는 나라들과도 우호적 관계를 동시에 추구하는 미국의 입장에서 미중 간의 신중하고 장기적인 대화가 요구된다”는 것이 30년 전 키신저의 지적이다.


또 키신저는 한국전쟁 당시 한국과 유엔군이 승리를 위해 북진 한계선에 대한 전략적 판단을 내려야 했다고 말한다. 청천강 이북은 완충지대로 남겨 놨어야 한다는 식이다. 압록강·두만강까지 진격해 중국을 자극하는 것은 불필요했다는 것이다. 3만9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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