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대통령 언어의 온도

강도원 정치부 차장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어려워 보이는 사안에 결단을 내리고 뚝심 있게 일을 끌어가는 점을 많은 이들이 강점으로 꼽는다. 지난 정부 시절 파탄 직전까지 갔던 한일 관계를 과감하게 개선해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데이비드에서 한미일 신(新)삼각공조를 끌어낸 것이 대표적이다. 명분에 얽매이지 않고 실리를 챙겼다는 평가를 받는다.


자신감을 얻어서일까. 최근 들어 대통령의 언어가 유독 거칠어졌다. 지난달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배출에 대해 (야권이) 나오는 것을 보라. (야권은) 1 더하기 1을 100이라고 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지난달 29일 예산안 의결을 위한 국무회의에서는 국무위원들을 향해 “여야 스펙트럼의 간극이 너무 넓으면 점잖게 얘기한다고 되지 않는다. 여러분들은 정무적 정치인이기 때문에 말로 싸우라고 그 자리에 계신 것”이라고 독려했다. 1일 국립외교원 60주년 기념사에서는 “아직도 공산전체주의 세력과 그 기회주의적 추종 세력, 반국가 세력은 반일 감정을 선동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대통령이 연일 얼음장같이 차가운 언어를 쏟아내면서 여당과 야당의 관계도 꽁꽁 얼어붙었다. 사법 리스크를 떠안은 거대 야당 대표는 명분이 잘 보이지 않는 무기한 단식투쟁까지 돌입했다.


윤 대통령의 거친 언어는 9월 정기국회의 주도권을 잡겠다는 복안일 것이다. 그런데 정기국회는 민생과 직결된 입법·예산을 매듭짓는 정치 공간이다. 윤 대통령은 예산안을 의결하는 국무회의에서 “경제와 민생을 챙기고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해 제출된 200여 건의 법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주요 국정과제의 법안 처리가 지연된다면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말대로 국민이 피해를 보지 않게 하려면 과반 의석을 차지한 민주당과의 협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지금 우리는 반도체 경기 악화, 심각한 가계부채, 중국발 경제위기, 북한의 안보 위협 등 복합 위기를 겪고 있다. 노동·연금·교육 개혁 등 국가적 현안도 쌓여 있다. 정부는 하반기가 되면 경제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며 ‘상저하고’를 내다봤지만 7월 생산·소비·투자가 일제히 하락한 ‘트리플 감소’는 일시적 현상이라는 정부의 해명에도 불안감만 키우고 있다.


민생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정치가 또다시 경제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될 수 있다. 정치는 결국 경제이고 협치가 경제를 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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