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커튼콜] 뮤지컬이 말하는 예술가…"인생은 비극일까, 희극일까?"



10만 원 넘는 돈을 내고 뮤지컬 공연장에 갔는데 앞사람 키가 너무 커 두 시간 넘게 고개만 기웃거리다 온 적 있나요? 배우의 노래뿐 아니라 숨소리까지 여운이 남아 같은 돈을 내고 본 공연을 또 본 적은요? 그리고 이런 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 혼자만 간직하느라 답답한 적은 없나요? 세상의 모든 뮤덕(뮤지컬 덕후)의 마음을 대신 전하기 위해 뮤덕 기자가 나섰습니다. 뮤지컬 애호가를 위한 뮤지컬 칼럼, ‘어쩌다 커튼콜’과 함께하세요.




찰리 채플린은 이런 유명한 명언을 남긴 적이 있습니다.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고,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요. 채플린 자신도 무대 위와 영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을 웃기는 동시에 그 이면에서는 음울한 삶을 살아오기도 했죠. 그 누구의 삶이 입체적이지 않을까 싶지만, 예술가들은 뚜렷한 희노애락과 함께 유독 파란만장한 인생을 사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생의 기승전결이 참 드라마틱하다고 해야 할까요. 이들은 때론 사랑하는 사람과는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 깊은 고독에 시달리며 때로는 박해를 당했습니다. 반면에 빛나는 재능에 어울리는 명예를 가지고 사람들의 찬사를 받기도 하며, 사소한 행복을 자신의 일부로 소중히 간직하며 기쁨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일 테지요. 예술가들은 인생 속 수많은 사건들의 씨줄과 날줄을 엮어 예술로 승화하는 존재들이고요.


예술가의 일생은 수많은 이야기들의 영감이 되어 왔습니다. 영화, 소설,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통해 조금씩 면모를 달리하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요. 뮤지컬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사실 뮤지컬이야말로 예술가의 삶을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에 적합한 예술일지 모릅니다. 뮤지컬엔 이야기가 있고, 노래가 있고, 춤이 있고, 무대가 있으니까요. 21세기 한국을 살아가는 우리가 뮤지컬 속 유럽의 왕실을 이질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처럼, 복합적인 뮤지컬의 특성은 관객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원료가 되죠.


오늘의 커튼콜은 실존 예술가의 삶을 담아낸 뮤지컬을 살펴보려 합니다. 좋아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떠올리면서 뮤지컬 속 인물과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요.



나는 장조, 나는 단조, 나는 멜로디…나는 음악!


뮤지컬 '모차르트'의 한 장면. 사진 제공=EMK뮤지컬컴퍼니

저는 뮤지컬 ‘모차르트’를 참 좋아합니다. 좋아하는 이유를 꼽자면 한도 끝도 없어요. 실베스터 르베이가 작곡한 아름다운 넘버도 좋고, 그 기반이 되는 작곡가 모차르트의 음악들도 좋고요. 한국의 관객들도 아마 저와 비슷한 이유로 모차르트에 열광했나 봅니다. 2010년 한국에서 초연을 올린 ‘모차르트’는 올해로 13주년을 맞이하면서 식지 않는 인기를 증명했습니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익히 알려진 천재 음악가입니다. 18세기 잘츠부르크에서 태어난 그는 후기 고전주의 음악을 이끌면서 쉴 새 없이 역량 있는 작품을 쏟아냈죠. 모차르트의 음악을 태교 중에 들으면 똑똑한 아이가 태어난다는 속설이 있을 정도로,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탁월한 천재성을 드러내 왔습니다. 뮤지컬 속에서 모차르트의 고용주였던 콜로라도 영주는 메마르지 않는 그의 재능을 시샘하기도 하죠.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살리에리가 그를 질투하는 모습을 보이는데요. 실제 삶 속에서는 살리에리가 모차르트보다 더욱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하죠. 뮤지컬에서는 살리에리의 모습은 크게 드러나지 않습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한 장면. 사진 제공=EMK뮤지컬컴퍼니

그러나 그의 재능은 모차르트의 생명을 갉아먹기도 합니다. 아버지 레오폴트의 엄격한 훈육과 섬세하고 충동적인 성격, ‘신동’의 그늘이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이끌고 갑니다. 뮤지컬 ‘모차르트’의 무대 한 편에는 재능을 상징하는 어린 모차르트가 항상 곡을 써내리고 있죠. 모차르트가 아버지와 반목하거나 아내 콘스탄체와 다툴수록, 어린 모차르트는 더욱 더 찬란한 작품을 만들어냅니다.


모차르트가 작곡한 밤의 여왕의 아리아, 마술피리의 파파게노와 파파게나의 이중창, 여러 협주곡과 교향곡은 불멸의 명곡들로 손꼽히는데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작품을 만든 모차르트는 생활고에 시달린 끝에 ‘레퀴엠’ 의뢰를 받아든 후 생을 마감하게 됩니다. ‘황금별’을 꿈꾸면서 음악의 세계에 푹 빠져든 모차르트. 단조이자 장조였던, 포르테이자 피아노였던 발자취는 모차르트에게 반드시 행복만을 안겨주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가 좇던 것은 악보 위에 남아 아직도 우리 곁에 머무르고 있지만, 정작 뮤지컬 속 그는 “난 모든 것을 바쳤다”면서 외롭고 쓸쓸하게 생을 마칩니다. 그는 행복했을까요, 불행했을까요.



뮤지컬 '베토벤' 공연 사진. 사진 제공=EMK뮤지컬컴퍼니

모차르트를 말하면 운명처럼 떠오르는 사람이 있죠. 베토벤입니다. 청력을 상실했지만 깊은 고뇌가 담긴 작품들을 만든 베토벤은 자유롭고 재기발랄한 이미지의 모차르트와는 다른 감동을 주는 음악가로 남아 있습니다. EMK뮤지컬컴퍼니는 실베스터 르베이와 힘을 합쳐 올해 뮤지컬 ‘베토벤’을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사실 모차르트도 그렇지만 베토벤은 금쪽이였습니다. 그가 궁정음악가가 되길 바란 아버지는 베토벤을 학대하며 계속해서 음악에 몰두하게 합니다. 아버지 덕분에 클래식의 거장 베토벤이 있을 수 있었지만 사실 살아있을 당시 베토벤은 늘 괴로웠습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이지만 베토벤은 청력을 상실합니다. 음악을 향한 고통과 열정, 유년기의 학대로 인한 스트레스는 결국 그에게 장애를 안겨 주었습니다. 음악을 하는 사람인데 청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그 절망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물론 베토벤도 초기에는 좌절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며 주변에 히스테리를 부렸죠.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청력을 잃어가던 이 시기 수많은 명곡이 탄생했습니다. 뮤지컬에서는 그 이유를 ‘안토니’에서 찾습니다. 안토니를 만나 사랑에 빠져 아름다운 곡이 탄생했다는 그런 사랑스러운 이야기는 아닙니다. 뮤지컬 ‘베토벤’에도 나오지만 두 사람의 사랑은 사실 ‘불륜’이었죠. 그래서 안토니 덕분에 영감을 얻고 떠나버린 안토니 때문에 또 영감을 얻죠. 베토벤의 인생은 사실 그의 음악 서사와 거의 일맥상통합니다. 비극에서 희극이, 희극에서 다시 비극이 탄생하며 소용돌이 칩니다.



비바 라 비다, 인생이여 만세!…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아


뮤지컬 '프리다' 공연 사진. 사진 제공=EMK뮤지컬컴퍼니

그림도 중요한 예술의 장르임은 분명하죠. 세심한 터치를 통해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는 화가는 우리에게 직관적인 세상의 창을 제공합니다. 20세기 멕시코의 화가 프리다 칼로를 알고 계시나요. 아마 그의 이름은 알지 못하더라도 프리다 칼로가 그린 자화상은 한번쯤 지나친 적이 있을 텐데요. 뚫어질 듯이 그림 너머를 바라보는 프리다 칼로의 자화상은 격변을 겪는 시대에서 그가 내다본 현실을 상징하는 듯하죠.


프리다 칼로 또한 뮤지컬로 만들어져 넘실거리는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의 삶을 격렬한 춤과 노래로써, 그리고 화려한 무대로써 전달하고 있습니다. 지금 공연 중이기도 한 뮤지컬 ‘프리다’는 프리다와 또 다른 그의 일부이기도 한 ‘레플레하’ ‘데스티노’ ‘메모리아’가 콘서트와 토크쇼, 인터뷰 형식으로 그의 일생을 풀어냅니다.


프리다의 삶은 평온하지 않았습니다. 6살에 소아마비를 겪고, 성장한 후에는 큰 교통사고에 휘말려 두고 두고 아픔에 시달리기 일쑤였습니다. 그와 동시에 불평등한 세상을 바꾸겠다는 원대한 혁명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삶의 감정을 분석하는 프리즘이 있다면 프리다는 강렬한 빨강색으로 온 삶을 채웠을 것 같습니다. 그의 심장은 멎는 날까지 열정과 함께 뛰었을 것이고요. 초연부터 ‘프리다’를 맡은 배우 김소향은 최근 인터뷰에서 “프리다의 그림이 집에 걸려있을 정도로 팬”이라면서 프리다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기도 했습니다.김소향의 말처럼 프리다는 언제나 인생의 고된 위기에 투쟁할 수 있는 사람이었고, 그의 형형한 정신은 그림 속에 간직되고 있습니다.



뮤지컬 '라흐 헤스트' 공연 사진. 사진 제공=홍컴퍼니

“Les gens partent mais l’art reste.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아)”


예술가의 삶에는 필연적으로 예술가의 가족이 존재합니다. 위 프랑스어 대사는 한국을 배경으로 한 뮤지컬 ‘라흐 헤스트’ 속에 나오는 대사인데요. 뮤지컬 ‘라흐 헤스트’는 예술가의 아내였지만 동시에 그 자신이 예술가이기도 했던 김향안(변동림)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입니다.


시인 이상의 아내이면서, 화가 김환기의 아내이기도 한 그는 다른 시간대, 다른 색깔의 사랑을 거쳤습니다. 뮤지컬 곳곳에서는 이상의 시가 등장하면서 문학적 분위기를 더하는데요, 이상이 난해하지만 천재성을 담은 시구를 읊을 때마다 ‘동림’은 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합니다. 이상은 “역시 동림”이라고 답하면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죠.


두 번째 남편이었던 김환기와의 사랑은 이와는 반대로 역순으로 전개됩니다. 떠나간 화가의 아내로서 시작한 전시회, 깊은 유대감에서 비롯된 나이든 화가와의 대화, 그리고 첫 만남까지. 이상을 사랑한 동림과 김환기를 사랑한 향안이 시간을 뛰어넘어 마침내 만나는 순간, 우리는 제목의 의미를 상기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제 김향안이 남긴 말이기도 한 ‘라흐 헤스트(예술은 남다)’는 연인과의 순간이 영원할 수는 없겠지만, 기억과 예술을 통해 찬란한 순간을 회고할 수 있다고 말을 건네죠.



뮤지컬 '라흐 헤스트' 공연 사진. 사진 제공=홍컴퍼니

이상과 김환기를 모두 먼저 떠나 보낸 김향안의 삶은 한 마디로 명쾌하게 정리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습니다. 흘린 눈물은 얼마나 많을 것이며, 또 속삭인 사랑의 순간은 얼마나 잦았을까요. 그렇지만 ‘날개’와 ‘봄의 소리’의 옆에는 그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뮤지컬을 통해서도 세 사람의 마법 같은 이야기를 전달하며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건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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