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미국 뉴욕의 한 골목을 연상하게 하는 서울 한남동의 좁고 가파른 계단. 이 계단을 내려가다 보면 한낮에도 네온사인을 뽐내는 전시공간, ‘현대카드 스토리지’가 있다. 여느 미술 전시관처럼 웅장하거나 우아하지는 않지만 요즘 세대의 언어로 ‘힙’하다. 이 장소와 가장 어울리는 초대형 전시가 단 3일간 열린다. 세계 현대 미술사 최고의 거장, 장 미셀 바스키아와 앤디워홀의 2인전이다. 크리스티 코리아는 두 사람의 작품을 선보이는 ‘헤즈 온: 바스키아&워홀’ 전시를 5일부터 사흘간 개최한다.
이번에 크리스티 코리아가 고객들로부터 대여해 온 작품은 총 10점으로 전시 규모는 크지 않다. 하지만 전시에 내걸린 작품의 가격은 총 1억5000만 달러(2000억 원)이 넘는다. 바스키아와 워홀을 좋아하는 미술 애호가들이라면 꼭 들를 만한 그야말로 ‘역대급’ 전시인 셈이다.
실제로 관람객은 바스키아의 대표작 ‘전사(Warriors)’와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1981~1983년 사이의 작품 6점을 한 공간에서 볼 수 있다. 바스키아는 미국 미술계에서 배제된 흑인을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을 주로 그렸다. 작품 속 흑인은 복싱선수, 농구선수, 재즈 음악가 등 바스키아가 설정한 영웅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리고 모든 작품은 가장 먼저 몸보다 ‘두상’이 눈에 들어온다.
전시는 바스키아의 작품이 걸린 공간을 워홀의 대표작 ‘자화상(Self-Portion)’이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기획됐다. 전시의 이름이 ‘헤드 온(Heads on)인 이유다. 워홀은 바스키아의 평생의 영웅이었다. 그가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던 1980년 대 초반 앤디워홀은 거물이었지만 두 사람은 후일 협업으로 작품을 제작할 정도로 깊은 우정을 갖고 각자의 작품 세계를 교류한다.
두 사람이 사망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두 사람의 우정을 그린 전시가 지속적으로 열리는 이유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 루이비통재단 미술관에서 열린 전시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1991년 과천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워홀과 바스키아의 세계' 이후 두 사람을 함께 조명하는 전시가 없었다.
마릴린 먼로, 죽음, 재난 등 비극적 소재만 그리던 워홀은 말년에 정신적 문제로 고통 받았는데,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꽃’을 그리기로 한다. 그의 또 다른 대표작 ‘꽃 시리즈’의 탄생이다. 당시 워홀이 소재로 삼은 꽃은 필름기업 ‘코닥’이 컬러 인쇄기를 광고하기 위해 찍은 사진이었다. 워홀이 그린 꽃은 이 사진 속 이미지를 차용한 것으로 후일 사진 작가로부터 저작권 침해로 고소를 당하기도 한다. 해당 작품 역시 이번 전시에서 감상할 수 있다.
다만 짧은 전시 기간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5~6일은 미술계 주요 관계자를 대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일반 관객이 관람할 수 있는 날은 7일 하루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