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상승으로 수익을 내기 어려운 박스권 장세가 이어지자 한동안 뜸했던 공매도 세력이 2차전지주 하락에 대거 베팅하고 나섰다. 특히 외국인투자가를 중심으로 에코프로(086520), 에코프로비엠(247540), LG에너지솔루션(373220), 포스코홀딩스(POSCO홀딩스(005490)), 엘앤에프(066970) 등 다섯 종목에 대해서만 무려 5조 원이 넘는 공매도 잔액을 쌓아 주가 하락을 부추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달 1일 기준으로 에코프로·에코프로비엠·LG에너지솔루션·포스코홀딩스·엘앤에프 등 다섯 기업에 대한 공매도 잔액은 총 5조 3999억 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에코프로의 공매도 잔액만 1조 7254억 원에 달했다. 지난달 30일 8308억 원에서 2거래일 만에 2배 이상 증가했다. 공매도 비중도 2%대에서 단숨에 5.50%까지 뛰어올랐다. 올 1월 2일 540억 원에 불과했던 에코프로 공매도 잔액은 7월 17일 1조 3094억 원으로 불었다가 이후 다소 감소해 지난달 30일까지 줄곧 8000억 원대에 머물렀다.
에코프로뿐 아니라 같은 2차전지 대표 종목인 LG에너지솔루션의 공매도 잔액도 지난달 29일 1조 원을 재돌파해 이달 1일 1조 3078억 원으로 늘었다. LG에너지솔루션의 공매도 잔액이 1조 원보다 많았던 때는 지난달 8일(1조 29억 원)이 마지막이었다. 포스코홀딩스의 공매도 잔액도 지난달 30일 1조 원을 돌파했다가 이달 1일 9629억 원 수준을 유지했다. 이 밖에 다른 2차전지주인 에코프로비엠(8726억 원), 엘앤에프(5312억 원) 등의 공매도 잔액도 8월 말부터 가파른 증가세를 보였다.
2차전지주에 공매도 자금을 주로 쌓는 투자 주체는 외국인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달 4일 코스피·코스닥 시장 전체 공매도 거래 대금(7784억 원) 가운데 외국인 매매가 차지하는 비중은 64.11%에 이르렀다. 시장 전체 공매도 거래 대금이 연중 최고치(2조 3616억 원)를 기록했던 7월 26일 외국인 비중이 52.87%였던 점을 감안하면 한 달간 국내 기관투자가보다 외국인투자가들의 공매도 잔액 감소 규모가 훨씬 적었던 셈이다. 이 기간 전체 공매도 잔액은 1조 5832억 원(67.03%) 줄었다.
외국인들이 공매도 자금을 2차전지주로 모으는 사이 에코프로비엠 주가는 7월 25일 46만 2000원에서 이달 4일 30만 7500원으로 33.44% 급락했다. 같은 기간 엘앤에프(23.74%), 에코프로(14.08%), LG에너지솔루션(10.77%), 포스코홀딩스(10.33%)도 두 자릿수 하락률을 보였다. 개인투자자들만 공매도 세력에 맞서 지난달 1일부터 이달 4일까지 포스코홀딩스를 8505억 원, 삼성SDI를 2682억 원, 금양을 2343억 원어치씩 순매수했다.
2차전지주의 공매도 잔액이 급증한 것은 최근 주가지수가 박스권을 맴돌자 외국인들이 하락 확률이 비교적 높은 종목에만 자금을 집중 투입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단기 상승·하락을 예측하기 어려운 다른 업종과 달리 상반기 주가 과열 양상을 거친 2차전지주에 대해서만큼은 추가적인 주가 조정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반도체주가 최근 시장 주도주로 올라선 점도 2차전지주의 외국인 수급 여건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정원석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에코프로비엠에 대해 “현 주가의 밸류에이션(실적 대비 주가 수준)은 2027~2030년 실적이 미리 반영된 수준”이라며 “단기간에 급등한 만큼 주가 조정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영 키움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주가 향방에 따라 반도체 업종으로 매수 자금이 쏠릴 수 있다”며 “2차전지주는 수출 부진 등을 감안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