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삼성, 차세대 '캐시 D램' 개발…패키징에만 2조 투자 고삐

[변곡점 맞는 K반도체 40년]
HBM 맞먹는 '캐시D램' 논의
과감한 투자로 시장 선점 노려

이재용(왼쪽 세 번째) 삼성전자 회장이 회사의 고급 패키징 라인이 설치돼 있는 천안 사업장에서 최신 패키징 기술 현황을 점검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가 고대역폭메모리(HBM)을 넘어선 차세대 ‘캐시 D램’ 기술을 개발하고 있다. 파운드리(칩 위탁생산) 최대 라이벌 TSMC를 바짝 추격하기 위해 한 해에만 2조원 이상을 패키징 라인 증설에 투자했다.


5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어드밴스드패키징(AVP)사업팀은 일명 ‘캐시 D램’ 기술 개발에 뛰어들었다.


캐시 D램은 최근 업계를 강타한 고대역폭메모리(HBM)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D램이다. HBM은 여러 개의 D램을 한 개 칩처럼 수직으로 쌓아 고용량을 구현하는 반면 캐시 D램은 단 한 개의 칩으로 HBM과 맞먹는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르면 2025년부터 양산하는 것을 목표로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캐시 D램은 HBM을 패키징할 때와 방법이 다르다. 현재 HBM은 그래픽처리장치(GPU) 옆에 수평으로 연결된다. 반면 캐시 D램은 프로세서 위에 수직으로 자리 잡아 연결된다. 이렇게 칩을 최대한 붙여서 배열하면 전기적으로 더 많은 정보를 처리하기가 쉬워지고 가격 경쟁력도 높일 수 있다. D램을 적층하면서 생기는 발열을 잡는 것이 향후 해결해야 할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 측은 “캐시 D램이 상용화될 경우 기존의 HBM보다 전력효율은 60% 개선되고 정보 이동 지연성은 50% 감소하는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전자는 캐시 D램 외에도 반도체 핵심 분야로 떠오른 첨단 패키징 기술을 실현하기 위해 불황에도 불구하고 올해 18억 달러(약 2조 원) 이상의 대규모 투자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또한 자사 반도체 제조뿐 아니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분야에서 반도체 ‘큰손’들을 유혹하기 위한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 패키징 기술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올해 AVP팀을 신설해 TSMC 등 라이벌 회사의 고급 패키징 기술을 바짝 추격하는 모습이다.


반도체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세 회로 구현이 점차 힘들어지면서 각종 칩을 이어붙이는 3D 패키징이 칩 회사들의 경쟁력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이라며 “삼성전자가 2030년 시스템반도체 1위 비전을 실현하려면 패키징 투자는 필수”라고 말했다.


◇'적층기술 고도화' 삼성, TSMC 맹추격…엔비디아도 사로잡는다




삼성전자가 ‘캐시 D램’ 등 패키징용 메모리 신기술 개발에 나선 데는 그동안 ‘후공정’ 정도로 여겨 등한시했던 패키징 분야에서 기술력 차이가 벌어지면서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시장을 TSMC에 내줬다는 반성이 작용했다. 실제 TSMC의 지난해 패키징 분야 매출은 51억 1300만 달러(약 6조 7466억 원)에 달해 삼성전자의 40억 달러(5조 2780억 원)를 앞서고 있다.


패키징 기술력의 중요성은 엔비디아의 인공지능(AI) 주력 칩인 H100 등장 이후 더욱 주목받고 있다. 대만 TSMC는 중앙처리장치(CPU)나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을 메모리 등 다른 기능의 반도체와 연결해 고성능 반도체를 만드는 일명 칩렛 기술을 2011년 개발해 세계 1위 파운드리 업체로 발돋움할 수 있었다. 이때 서로 다른 반도체를 수평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일명 2.5D 패키징이고 시스템반도체와 메모리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기술이 3D 패키징이라고 불린다. 삼성이 최근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이 바로 3D 패키징 분야다.


사실 반도체 업계에서 패키징은 ‘후공정’의 영역이었다. 전(前)공정에서 완성된 칩을 자르고 각종 배선을 연결한 뒤 오염·열로부터 안전한 막을 씌우는 작업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애플, 세계 최대 인공지능(AI) 반도체 업체 엔비디아, AMD 등이 2.5·3D 패키징 공정을 적극적으로 채택한 이후 업계의 판도는 완전히 바뀌었다. 특히 이들의 칩을 직접 생산해주는 파운드리 업체가 시장의 수요를 맞추기 위해 패키징 투자와 마케팅에 상당히 적극적이다.


TSMC는 2016년 애플에 팬아웃웨이퍼레벨패키징(FOWLP) 기반의 ‘InFO’라는 서비스를 공급하면서 첨단 패키징 분야에서 가장 먼저 주도권을 잡았다. 이 서비스로 삼성과의 애플 칩 수주 경쟁은 TSMC의 승리로 끝났고 ‘CoWoS’ ‘SoIC’ 등 기술을 선도적으로 내놓으며 업계를 휘어잡고 있다. TSMC가 대만에 확보하고 있는 첨단 패키징 공장만 5개다. 엔비디아·AMD 등과 상당히 끈끈한 협력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미국 인텔은 2.5D 이상 패키징 구현을 위해 자체 기술인 ‘포베로스’ ‘EMIB’ 등을 확보했다. 인텔은 자체 칩에 이 기술을 적용했는데 2021년부터 재개한 파운드리 서비스에도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들은 아예 패키징 분야의 장점을 살려 ‘개방형 파운드리’ 카드를 들고 나왔다. TSMC·삼성전자에서 칩을 생산한 고객이더라도 인텔의 고급 패키징 기술을 이용하고 싶다면 언제든 제공해주겠다는 뜻이다.


패키징 분야에서 ‘후발 주자’로 평가받는 삼성은 대대적 투자를 앞세워 시장 회복을 노리고 있다. 올해 강문수 부사장을 필두로 어드밴스드패키징(AVP) 사업팀을 설립하고 천안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도 이 사업장에 올 2월 직접 방문하면서 사업 현황을 챙겼다.


제품군도 늘렸다. 2021년 2.5D 패키징이 이뤄지는 메인 기판 아래에 보조 기판을 덧대 원가를 절감하는 ‘H-큐브’라는 독특한 형태의 상품을 선보였다. 또 TSMC의 2.5D 패키징과 유사한 ‘I-큐브’라는 브랜드도 내놓았다. TSMC가 강세를 보이는 FOWLP도 올 4분기부터 양산에 적용해 신규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에 탑재될 ‘엑시노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에 첫 적용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반도체 안에서 임시 기억저장소 역할을 맡는 S램을 따로 만들어 프로세서 위에 적층하는 X-큐브도 개발했다. 인텔과 협업하는 캐시 D램은 X-큐브에서 비용 절감, 용량 확대를 위해 한 단계 진화한 형태로 추정된다.


무엇보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3D 패키징 분야에서 ‘턴키’ 솔루션을 할 수 있어 경쟁사에 비해 향후 유리한 고지를 점할 가능성이 높다. 패키징에 필요한 기판을 계열사인 삼성전기에서 받아올 수 있고 세계 최강의 메모리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최적의 공급망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AI 수요 폭증으로 반도체 공급 병목현상이 생길 경우 TSMC를 바짝 쫓고 있는 삼성전자가 패키징 턴키 솔루션과 원가 경쟁력을 바탕으로 판도를 뒤집어 ‘큰손’인 엔비디아 등의 마음을 다시 사로잡을 수 있다.


올 5월 이 회장과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미국 회동 이후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사장 등 고위 경영진이 엔비디아와 접촉하며 패키징 기술 협력과 삼성 파운드리 생산을 타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메모리 사업에서부터 쌓은 패키징 노하우로 기술 안정성을 확보하고 있다”며 “공격적인 투자와 고객사와의 협력이 원활하게 이뤄진다면 향후 반도체 업계에서 최대 수혜 업체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X-큐브(오른쪽). 시스템 반도체와 S램이 수직적층되는 것이 핵심이다. 삼성전자는 이 패키징 솔루션을 업그레이드해 S램 대신 D램을 얹는 방법을 개발 중이다. 사진제공=삼성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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