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릭 난립 해소' 칼 뺐다지만…일선 약국까지 반품처리 골머리

[약가 인하 후폭풍]
◆ 일방통행 정책에 시장 혼란
11년만에 최대 폭 약품가격 조정
180개업체 사정권…사실상 전체
뚜껑 열어보니 중소제약사만 타격
공급 차질로 소비자 피해 우려도
업계 "얻은 것보다 잃은게 많다"


“정부와 소송을 벌인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겠습니까. 승소한다는 보장도 없는 데다 (약가 인하 대상 제네릭 매출이) 기껏해야 소송비보다 조금 더 나오는 수준인데 괜히 미운 털만 박히겠죠.”


약가가 28% 가까이 깎여 막대한 손실을 입게 된 A 업체 직원에게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진행하지 않은 이유를 물으니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약가 인하 대상의 매출 규모가 미미한 데다 소송 과정에서 감수해야 할 시간과 비용 부담이 크다 보니 실익이 없다고 판단해 시장 철수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6일 제약 바이오 업계에 따르면 2020년 7월 개편된 제네릭 약가제도 적용으로 7675개 품목의 보험 상한액이 최대 27% 이상 인하되면서 의약품 시장의 혼란이 커지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경구용 제네릭에 대한 의약품 상한 금액 1차 재평가 결과 7675개 품목의 가격을 인하하고 이로 인해 2970억 원의 건강보험 재정이 절감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앞서 2012년 1만 6700여 개 제네릭을 신약 대비 53.55% 수준으로 일괄 인하한 후 11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약가가 조정된 사례다.


정부는 2020년 7월 자체 생물학적 동등성(생동성) 시험 수행과 등록된 원료의약품 사용 등 2가지 요건을 충족해야만 기등재된 제네릭의 상한가를 유지할 수 있다는 제도 시행안을 공포하고 올해 2월 말까지 자료를 제출하도록 유예기간을 뒀다. 이번 약가 인하 대상에 포함된 제품을 보유한 기업은 180곳에 가깝다. 사실상 국내 제약사 대부분이 영향권에 든다는 얘기다.


제네릭 의존도가 높은 업체들은 정부 고시가 나온 직후부터 복잡한 셈법에 빠졌다. 약가 손실로 인한 타격이 큰 업체의 실무자들은 원료의약품 등록 절차를 밟느라 분주해졌고 자체 생동성 시험을 진행하려는 기업들의 수요가 몰리면서 일부 병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여기에 동일 성분 제네릭이 20개 이상 등재되면 가격이 추가로 인하되는 일명 ‘계단형 약가제도’까지 시행되면서 높은 가격으로 급여 목록에 등재해 놓은 제네릭 제품을 기업 간 양도 양수하는 기현상도 펼쳐졌다. 갑작스러운 약가 인하로 인한 기업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도록 마련한 유예기간이 오히려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킨 셈이다.


실제 이번 약가 인하로 인한 손실 규모를 살펴보면 매출 규모가 크지 않은 중소 업체들의 타격이 컸다. 휴텍스제약이 153개로 가장 많았고 하나제약(122개), 대웅바이오(115개), 이든파마(104개), 일화(101개) 등이 품목수 기준 상위권에 포진했다. 휴텍스제약은 지난해 기준 2700억 원의 매출을 기록한 중소 업체다. 이상지질혈증에 처방되는 복합제 ‘크레스티브정10/5mg’으로 지난해 81억 원의 처방 실적을 올렸는데 보험 상한액이 8.5% 내려가면서 연간 7억 원 상당의 손실을 입게 됐다. 업체마다 사정은 조금씩 다르나 역대급 약가 인하에도 약가 재평가 검토 결과에 불복하고 소송을 제기한 업체가 드문 이유는 그만한 비용과 시간을 들일 여력이 되지 않는 중소 업체가 많은 탓이라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비단 제약 바이오 기업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일선 약국과 의약품 도매 업체들도 약가 인하 제품의 반품, 정산에 골머리를 앓는 실정이다. 약국 입장에서는 100원에 구매한 약이 85원으로 떨어졌으니 도매 업체와 차액 정산이 필요하다. 고시가 나올 때마다 재고를 파악해 손실 규모를 산정해야 하는데 반품 조건을 맞추지 못해 약국이 손해를 감수하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제약사보다 영세한 도매 업체들도 당분간 약가 인하로 인한 반품·정산 등 업무 과중과 손해가 막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제약사가 수익성 악화를 이유로 의약품 공급량을 줄이거나 중단할 경우 자칫 환자들이 고스란히 피해를 떠안아야 할 수도 있다. 이번 약가 인하로 얻은 것보다 잃은 게 더 많다는 푸념이 나오는 이유다.


제약 업계의 한 관계자는 “당장 신약을 개발할 여력이 되지 않는 중소 업체 입장에서는 제네릭이 유일한 캐시카우”라며 “정부가 제약 바이오산업을 미래 먹거리로 키운다면서도 과학적 근거 없이 무리한 규제를 펼치는 동안 업체 간 빈익빈부익부 현상이 심화되고 제네릭 경쟁력이 떨어지는 악순환을 초래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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