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디지털시장법(DMA)’상 역내 특별 규제를 받는 대형 플랫폼 기업을 뜻하는 이른바 ‘게이트키퍼(문지기)’에 애플·구글 등 6곳을 지정했다. 다만 삼성전자(005930)는 당초 게이트키퍼 후보로 거론됐으나 최종 명단에서 빠졌다. 유럽에서 애플 아이폰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삼성전자 입장에서는 최상의 결과로 평가된다.
EU 집행위원회는 6일 게이트키퍼 기업으로 알파벳(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MS), 메타(페이스북), 아마존, 바이트댄스(틱톡) 등 6곳을 확정 발표했다. DMA는 대형 플랫폼 기업들이 시장 지배력을 남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일정 규모 이상인 기업을 ‘게이트키퍼’로 지정해 규제하는 법안으로 내년부터 시행 예정이다. 적용 분야는 6개 기업이 제공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앱마켓, 운영체제(OS)등 22개에 이른다.
게이트키퍼에 지정된 기업은 앞으로 EU 역내에서 자신들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사용자에게 우선 제공하거나 기본적으로 설치된 앱 삭제를 제한하는 등의 행위를 할 수 없다. 외부 서비스에 문호를 개방해야 하고 개인정보 활용 여부를 보다 명확히 고지해야 한다. 이를 위반하면 연간 글로벌 매출 대비 최대 10%에 이르는 과징금을 물게 된다. 반복해 어길 경우 과징금은 매출의 최대 20%까지 늘어난다.
아이폰 타격, 갤럭시 반사이익 전망
EU는 게이트키퍼 대상 기업이 ‘조직적인 침해’를 자행할 때는 기업 일부를 매각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과징금 범위가 EU가 아닌 세계를 아우르는 데다 이익이 아닌 매출을 반납해야 하고 규제 대상 서비스가 광범위해 DMA를 어기면 유럽 내 사업 철수까지 각오해야 한다는 평가다.
이에 게이트키퍼 후보로 거론된 기업들은 각사의 서비스 영향력이 낮다는 점을 강조하며 목록 제외를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앞서 EU는 7월 시가총액 750억 유로(107조 원), 연 매출 75억 유로(10조 7000억 원), 월 실사용자 4500만 명 이상을 넘어서는 기업들에 ‘자진 신고’를 받았다. 삼성전자도 자진 신고를 마친 후 갤럭시 스마트폰과 내장 앱의 시장 지배력이 적다는 점을 적극 소명했고 규제 대상에 오른 7개 기업 중 유일하게 빠질 수 있었다. EU는 “삼성전자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는 충분히 정당한 논거를 제시했다”고 설명했다.
삼성전자는 EU의 특별 규제를 받지 않게 된 반면 최대 경쟁사인 애플은 타격을 피할 수 없게 돼 상당한 반사이익이 기대된다. 특히 삼성전자에 비해 애플의 장점으로 꼽히는 아이메시지(문자), 페이스타임(영상통화), 시리(인공지능 비서) 등 아이폰 전용 기능의 영향력이 축소될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은 아이폰에 앱스토어 외 타 앱마켓 사용을 막고 있었는데 게이트키퍼로 지정되며 갤럭시 스토어 등 타 앱마켓도 도입할 가능성이 생겼다. 아이폰 이용자 개인정보 활용도 제한돼 데이터 수집과 향후 마케팅에서의 우위도 예상된다.
시장조사 업체 카날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서유럽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삼성전자 35%, 애플 33%였다. 삼성전자가 1위지만 1년간 삼성 판매량이 16% 감소하는 동안 애플은 1% 늘며 격차가 좁혀졌다. 정보기술(IT) 업계의 한 관계자는 “애플의 강력한 생태계와 높은 프리미엄 시장 경쟁력에 시달리던 삼성전자가 앉아서 이득을 보게 됐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