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고전의 재해석, 조제프 마리 비앵의 '큐피드 상인'

신상철 고려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


1715년 루이 14세의 사망 이후 프랑스 사회는 다양성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왕권과 교회의 독점적 지위는 점차 쇠퇴하고 새로운 가치를 추종하는 귀족과 부르주아, 그리고 지식인들이 프랑스 사회를 주도해 나갔다. 18세기 프랑스 사회에서 종교는 더 이상 사회 구성원들의 사유와 행위를 규정하는 지배 이데올로기로서의 지위를 행사하지 못했다. 이 시기 신앙의 자리를 대신한 것은 철학과 과학, 그리고 예술이었다. 지식인들은 이성적 사고와 과학적 접근 방법을 통해 인간 사회가 보다 심도 깊게 이해될 수 있다고 설파했고 이러한 현상은 1751년 드니 드디로의 백과사전이 출간되면서 더욱 가속화됐다.


18세기 계몽주의 철학자들은 신학적 세계관으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이성적 세계관을 구축하기 위한 방편으로 역사 연구를 수행했다. 이들에게 그리스·로마 시기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고전 시대는 이성적 역사의 시작점이자 그들이 지향하는 철학적 국가의 모델이었다. 계몽주의자들은 고전 시대의 이성주의적 세계관과 비기독교적 사회의 존재에 주목하며 이 시대를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사상적 가치와 결부시켰다. 1760년대 프랑스 미술계에서 고전 취향의 확산과 조제프 마리 비앵으로 대표되는 ‘그리스 양식’ 화가들의 등장은 이러한 배경 하에서 이뤄졌다.


‘큐피드 상인’은 비앵이 1763년 살롱전에 출품한 작품이다. 등장인물들의 의상은 역사적 고증 작업을 통해 표현됐으며 작품의 주제와 구성은 이탈리아 그라냐노 지역에서 발굴된 로마 벽화 속 이미지를 그대로 차용했다. 이 그림은 당대 비평계에서 고전의 완벽한 모방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계몽주의자들의 기대를 충족시키지는 못했다. 그들이 재현하고자 했던 것은 역사 속에 존재했던 고전의 실체가 아니었다. 그들은 고대인들의 사상을 기반으로 현실의 모순과 병폐를 개혁하는 데 기여하는 예술을 원했고 이것은 프랑스 대혁명 시기에 활동한 비앵의 제자, 자크 루이 다비드에 의해 실현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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