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반도체 업계 전문가들이 화웨이의 신규 7㎚(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 생산 비용이 삼성의 동급 극자외선(EUV) 공정 비용보다 100배 이상 비싸 원가 경쟁력에서 크게 밀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현지 회사들이 중국 정부의 천문학적인 지원을 등에 업고 7나노 이하 반도체 양산까지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6일(현지 시간) 반도체 분석 기관 테크인사이츠는 화웨이가 최근 발표한 메이트60 프로에 적용된 ‘기린9000s’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가 중국 파운드리(칩 위탁 생산) 업체 SMIC 7나노 공정에서 제조됐다고 추정했다. 서울경제신문의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은 SMIC는 기린9000s 양품 생산을 위해 공정에 상당한 비용을 투입했을 것으로 봤다. 익명을 요구한 반도체 업계의 한 전문가는 “SMIC가 ASML의 EUV 장비를 공장 안에 설치할 수 없다는 한계를 고려하면 비용 부담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SMIC가 ASML 노광장비를 쓸 없는 것은 2019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미국의 대중국 EUV 장비 제재 때문이다. EUV 노광장비는 빛으로 7나노 이하 반도체 회로를 웨이퍼 위에 새기는 장비다. EUV 빛은 범용 노광 공정에서 쓰이는 심자외선(DUV)보다 파장이 14분의 1 짧은 13.5㎚로 첨단 칩 생산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로 손꼽힌다.
SMIC는 EUV 장비 공급망이 망가지면서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7나노 칩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SMIC가 선택한 방법은 2019년 대만 TSMC가 EUV 없이 구현했던 7나노 공정과 유사하다는 평가다. 가령 EUV 공정으로는 한 번에 할 수 있는 작업을 DUV 노광 장비로 2~4번 반복 진행해 미세 회로를 새기는 방식이다.
같은 공정을 반복하다 보면 공정 시간과 과정이 늘어나 생산성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2019년 7나노 EUV를 세계에서 가장 먼저 파운드리 양산에 적용해 업그레이드해온 삼성전자 기술과 비교하면 원가 경쟁력에서 크게 뒤처질 것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다만 업계에서는 중국 정부가 이들의 비용을 보전하며 강력한 지원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다. 이종환 상명대 교수는 “EUV 없이 칩을 만드는 것까지는 가능해도 이 부분에서 비용 출혈이 있을 텐데 그럼에도 양산을 했다는 것은 정부의 지원이 상당했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앞으로 EUV 없이도 3·4나노 칩까지 개발할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고 봤다. 중국 SMIC는 사상 초유의 반도체 불황에도 적극적인 설비투자에 나서면서 지난해 8인치 웨이퍼 기준 약 67만 장이었던 전체 생산능력을 올 2분기 11.59% 늘어난 75만 4250장으로 끌어올렸다. 설비투자 중 대부분은 레거시(구형) 반도체에 투자하지만 특정 공장에 최첨단 팹을 구성해 기술 개발과 수율 증가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반도체 장비 제재에 따른 반작용으로 중국의 장비 국산화가 속도감 있게 진행 중인 것도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 중국 당국은 아예 초대형 반도체 펀드를 조성해 기술 격차를 더욱 좁히면서 장비 공급 위기를 타개할 계획이다. 로이터는 “중국이 3000억 위안(약 55조 원)에 달하는 반도체 제조 장비 지원 펀드 구성을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중국 공영방송 CCTV는 뤼팅제 중국우정전신대 교수를 인용해 “3~5년의 격차는 서방 기술 진보 속도에 맞춘 기준으로 중국은 이를 초월할 수도 있다”고 자신했다. 실제 2002년 설립된 중국 노광장비 업체 SMEE는 올해 말 28나노 칩 생산이 가능한 노광장비 양산에 들어간다.
반도체 설계 분야 측면에서도 칩 디자인에 필요한 인력은 유출되지 않았다. 미국의 화웨이 반도체 제재로 흩어진 인력들이 중국 각지에서 창업을 하거나 화웨이의 파트너사로 일하게 되면서 영내 반도체 생태계가 더욱 커지는 상황이 벌어졌다는 분석까지 나온다.
충격에 빠진 미국은 향후 더욱 강력한 제재를 검토할 것으로 예상된다. 로이터는 “메이트60 프로 분석 결과가 미국 상무부 산업보안국의 조사를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며 “미국 하원이 준비 중인 중국 견제 법안이 더 엄격해질 수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