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규범 지키면 경제교류 문제 없어"…한중관계 개선 첫발 뗐다

[한중회담]
◆ 中 서열 2위와 51분 단독회담
리창 "선린우호 원칙 속 상호배려"
한일중 정상회의 재개도 의견 일치
북러 밀착에 中 셈법 더 복잡해져
양국 모두 대화 재개 필요성 커져
한미일 협력 강화하며 中자극 자제

윤석열 대통령이 7일(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컨벤션센터(JCC)에서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과 리창 중국 총리 사이의 회담이 막판에 성사된 것은 윤 대통령이 내세운 ‘보편 가치 연대’ 기조와 미국의 봉쇄 전략을 타개하려는 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기에 북러 정상회담이 임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진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과 리 총리는 서로 양국 교류·협력을 강화하고 빠른 시일 내 한일중 정상회의를 추진하자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7일(현지 시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컨벤션센터(JCC)에서 리 총리와 만나 “양국이 국제사회의 규범을 잘 지킨다면 문제 없이 예측 가능한 경제 교류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윤 대통령은 리 총리가 상하이시 당서기장을 지낼 당시 한국 기업들과 활발히 교류했다는 점을 평가하며 양국 교류에 많이 기여해달라고 당부했다. 이에 리 총리는 “선린 우호의 원칙을 견지하며 양국이 상호 관심사를 배려한다면 원숙한 신뢰 관계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화답했다. 2019년 이후 열리지 못한 한일중 정상회의를 재개하자는 데도 양측의 의견이 일치했다. 김 차장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의장국으로서 리 총리에게 회의 개최 의사를 밝혔고 리 총리는 적극 호응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전문가들은 윤 대통령이 일본과 달리 총리와 공식 회담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양측 모두 회담을 통한 돌파구 마련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이번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 정상회의에서 리 총리와 ‘풀어사이드’ 형식으로 만나는 데 그쳤다. 풀어사이드란 여러 참석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지나치며 잠깐 이야기를 하는 형태의 회담이다. 반면 윤 대통령은 별도의 장소에서 공식 외교 절차를 거쳐 리 총리와 회담을 갖고 한중 관계 모색을 위해 적극 나섰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중국이 오염수 방류 문제로 일본과 거리를 두는 상황에서 한국까지 멀리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미일 협력을 견제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한일 중 한국의 문을 두드릴 수밖에 없다는 의미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미국의 전방위 봉쇄 전략에 맞서 협력국 발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정상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이란·아랍에미리트(UAE)·아르헨티나·이집트·에티오피아를 새 회원국으로 받은 것이 대표적이다. 브릭스가 새 회원국을 받은 것은 13년 만에 처음이다.


북러의 밀착도 중국이 한국과 대화를 재개해야 할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와 북한의 교류가 늘어날 경우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감소할 수 있는 데다 중국으로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에 협력하는 것으로 비치는 북러 협력에 거리를 둘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대화를 시작함으로써 북한에 경고성 메시지를 보낼 수 있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었을 것으로 풀이된다.


우리 역시 중국과의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를 통해 한미일 연대 전선의 기틀을 다졌지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면 중국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어서다. 한국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고점 대비 7%포인트가량 하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20%에 가까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데 중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라는 점도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윤 대통령 역시 순방 직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이 북한에 대해 가지고 있는 레버리지가 상당하다”고 평가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몸값 올리기 전략’도 한몫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외교 관계자는 “중국을 상대할 때는 너무 저자세로 나가서도 안 되고 고자세로 일관해도 안 된다”며 “중국 측 자존심을 지키면서도 얕보이지 않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했다. 친중 노선으로 일관하기보다 한미일 협력을 강화하면서도 직접적으로 중국을 자극하는 발언을 자제해온 덕에 오히려 쉽게 대화 상대로 인정받았다는 설명이다. 김천식 통일연구원장은 “오히려 최근 한미일 관계가 강화되면서 중국이 우리를 압박할 여지가 줄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윤 대통령은 아세안 정상회의 내내 중국의 면전에서 할 말을 다 했다. 윤 대통령은 전날 아세안+3 회의에 이어 한중회담 직전에 열린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도 “북한의 핵 개발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자 세계 평화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며 “핵·미사일 개발 자금원인 가상자산 탈취, 해외 노동자 송출, 해상 환적 등 불법행위를 적극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러시아를 겨냥해서도 “모든 유엔 회원국은 안보리 제재 결의를 준수해야 한다”며 “결의안을 채택한 당사자인 상임이사국의 책임은 더욱 무겁다”고 꼬집었다. 상대적으로 북러와 가까운 중국으로서는 불편할 수 있는 발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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