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십자각]양복 입은 군인

이현호 정치부 차장


근대사를 보면 군사기술의 발달과 함께 군(軍)이 전문 집단화하면서 전쟁이 일어난 경우가 많다. 1914년 유럽 전역을 공포로 휩싸이게 한 1차 대전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이 아니었는데도 발발했다. 23년 후 일본군이 일으킨 중일전쟁과 미국 진주만 기습도 비슷했다. 군국주의를 추구하는 군을 정치 지도자들이 제대로 제어하지 못한 결과 누구도 원하지 않았던 끔찍한 전쟁이 일어났다. 1·2차 대전에서 전쟁을 일으킨 국가들은 국민들을 패전의 잿더미로 내몰았다.


전 세계는 1·2차 대전을 겪으면서 폐쇄적이고 권력화된 군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민주주의국가에서 문민 통제(civilian control)가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은 이때다. 국민이 선출한 정치권력(대통령)과 문민 관료(국방장관)가 안보 정책을 주도·결정하고 안보 전문가 집단인 군은 군사작전으로 이를 뒷받침하는 체계다.


문민 통제의 성공 사례로는 미국이 꼽힌다. 미국은 문민 국방장관 임명을 법률로 규정했다. 군 출신은 전역 후 7년이 지난 뒤 임명이 가능하다. 장관이 군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국민을 대신해 군을 통제하기 위한 안전장치다. 이런 까닭에 미국은 병사 출신 장관이 존재한다. 장성급 장교 출신 장관도 단 3명뿐이다. 군 내부에서도 대통령과 장관에 의한 문민 통제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을 찾기 힘들다. 1963년 제3공화국 이후부터는 민간인 출신 장관이 나오지 않고 있다. 역대 47명의 국방부 장관 중 민간인 출신은 다섯 차례뿐이다. 전역한 지 1년 내외거나 현역 장성에서 바로 장관으로 자리를 옮기는 게 비일비재했다. 국방부 장관들을 두고 ‘양복 입은 군인’이라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윤석열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경찰청이 문민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전국 경찰들의 반대에도 행정안전부에 경찰국까지 신설했다. 그런 윤 대통령이 정작 군에 대해서는 다른 선택을 했다. 육군 3성 장군 출신을 국방부 장관으로 앉혔다. 군이 특수한 전문 영역이라 이를 잘 아는 장군 출신이 국방부 장관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군 출신만이 국방부를 책임질 이유는 없다. 한국전쟁 때인 1950년 6월부터 1952년 3월까지 민간인 국방부 장관 2명이 전쟁을 지휘했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문민에 의한 군의 민주적 통제를 지지한다고 했다. 최근 국방부 장관 교체 얘기가 돌고 있다. 문민 통제 원칙을 1순위로 고려하면 좋겠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