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스&] 70대 거장, 43년만에 '벽' 넘다…'하루키 세계관'의 완성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문학동네 펴냄)


책의 마지막인 761페이지를 읽고 넘기면서 잠시 생각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진짜인가 아니면 분신(그림자)일 뿐인가. 잠시 혼란이 생겼을 정도로 책이 주는 이미지가 생생하다는 의미다.


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74)의 신작 장편소설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원제는 街とその不確かな壁)’이 국내 출간됐다. 이 소설은 하루키가 전작인 ‘기사단장 죽이기’ 이후 6년 만에 발표한 장편이다. 일본에 이어 국내에서도 이미 흥행 돌풍이다.


책은 평행이론을 연상시키는 구성에 거대한 벽으로 둘러싸인 고립된 도시, 상실과 고독한 여행, 초현실적인 사건과 불가사의한 존재, 책과 도서관, 여름날의 첫사랑 등 하루키 작품 세계의 주요 요소가 집약됐다는 평가다.


플롯이 전작들과 비슷하다는 지적에 대해 하루키는 책의 ‘작가 후기’에서 “한 작가가 일생 동안 진지하게 쓸 수 있는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그 수가 제한되어 있다. 우리는 그 제한된 수의 모티프를 갖은 수단을 사용해 여러 가지 형태로 바꿔나갈 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책은 열일곱살 소년 ‘나’가 열여섯살 소녀 ‘너’를 만나고 서로 좋아하게 되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너’는 진짜 자신은 높은 벽에 둘러싸인 어떤 도시 안에 있고, 지금 여기 있는 자신은 그림자라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어느 날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나’는 좋아했던 ‘너’를 찾아 그 도시로 간다.


‘나’는 도시에서 ‘너’를 만나지만 ‘너’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하지만 ‘너’와 계속 있고 싶은 ‘나’는 역시 그림자만 벽 밖으로 보내고 자신은 그 도시에 남는다. 그리고 그림자는 현실에서 마치 ‘나’라고 생각하면서 ‘나’의 삶을 산다.



8일 서울의 한 대형 서점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코너가 마련돼 있다. 연합뉴스

하루키는 지난 4월 미국의 한 강연에서 이 작품을 언급하며 “주인공은 벽에 둘러싸인 조용한 거리 속에 있어야 할지, 벽 밖으로 나와 현실 세계로 돌아가야 할지 결단을 고민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물론 결말로서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진짜 ‘나’는 그 도시를 떠난다.


지난 1979년 데뷔한 하루키는 이듬해인 1980년 문예지 ‘문학계’에 발표한 동명의 중편을 발표했었다. 다만 하루키는 이 소설을 미숙한 작품으로 여겨 단행본으로 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작품들 중 단행본으로 출간되지 않은 작품은 이것이 유일했다.


이번에 책을 출판한 문학동네는 “70대의 하루키가 43년 만에 청년 하루키를 만나 자신의 세계관을 완성했다”고 설명했다. 1만 9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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