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간 지속된 폭염으로 미국 텍사스주 전력 공급에 비상등이 켜졌다. 당장 전력 공급이 중단되지는 않았지만 열대야가 계속되는 데다 바람까지 불지 않아 풍력발전마저 차질을 빚어 언제라도 비상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폭염과 가뭄에 공장 가동의 필수 요소인 수자원도 메말라 삼성전자(005930)·테슬라를 비롯해 텍사스에 진출한 기업들은 생산 중단을 걱정하는 처지다.
유럽에서도 물 부족 사태가 빚어지면서 산업계 안팎에서는 이러한 현상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폭염과 가뭄의 원인이 이상기후라는 점에서 기후위기가 첨단산업에도 본격적으로 불똥을 튀기는 모양새다.
7일(이하 현지 시간) 블룸버그·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텍사스주 전력망을 운영하는 전기신뢰성위원회(ERCOT)는 전날 오후 7시 25분 에너지 비상경보 2단계를 발령했다. 비상경보 2단계는 예비 전력이 1750㎿ 아래로 떨어져 30분 이내로 회복되지 않을 때 발령된다. 경보는 77분 만에 해제됐지만 이날도 전력 부족이 계속돼 ERCOT가 주민들의 전기 절약을 당부했다.
텍사스는 언제 전력 공급 중단 사태를 맞아도 이상하지 않는 상황이다. 6일 2단계 비상경고 선포 당시 최대 전력 사용량은 83GW였다. 올해만 이를 넘어서는 부하가 10번 이상 기록됐다. 일차적인 원인은 첨단산업 집약이다. 텍사스에는 반도체·전기차·배터리 등 주요 기업의 공장이 속속 신설되고 있다. 테슬라 기가팩토리, 반도체 기업 텍사스인스트루먼트,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 글로벌웨이퍼스, 삼성전자 오스틴·테일러 공장 등이 대표적이다. 자연스럽게 인구도 증가 추세다. 블룸버그는 “2018년 이전에는 최대 전력 사용량이 60GW에 불과했다”며 “2020~2022년 텍사스주 인구가 노스다코타주 전체 인구와 맞먹는 80만 명가량 증가하며 전력 소모가 빠르게 늘었다”고 전했다.
올해는 열대야 탓에 태양광발전이 불가능한 일몰 이후의 에어컨 사용도 늘었다. 최근 들어서는 바람조차 불지 않아 풍력발전까지 차질을 빚고 있다. 블룸버그는 “시간이 흐를수록 계절을 가리지 않고 더 극단적인 날씨가 초래될 가능성이 높다”며 “재생에너지는 전기료를 억제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순간적인 부하에 취약하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오스틴 공장이 2021년 2월 30년 만의 기록적인 한파에 3일간 정전된 트라우마가 있어 비상이다. 당시 정상화에는 6주가 소요됐으며 3000억~4000억 원 상당의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반도체 공정은 수 주간 연속적으로 이뤄져 문제가 발생하면 생산라인에 투입된 모든 재료를 버려야 한다.
무더위에 따른 가뭄은 물 부족도 함께 초래한다. 텍사스 수자원개발위원회는 지난해 주 전체 면적의 94%가 가뭄에 시달린 것으로 파악했다. 삼성전자가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인 테일러 지역에서도 물 부족에 세차장과 세탁소 가동이 일시 중지되기도 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첨단산업 대다수는 ‘물 먹는 하마’다. 화학약품을 씻어내는 데 대량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북미에서만 매년 1000만 톤 이상의 수자원을 쓰고 있다.
유럽도 전력과 물 부족에 고통받고 있다. 올 4월 ‘완전 탈원전’ 국가가 된 후 전력 수입이 크게 늘어난 독일에서는 벌써부터 원전 재도입 주장이 나온다. 독일 통계청에 따르면 올 상반기 독일의 발전 규모는 234TWh(테라와트시)로 1년 전보다 11% 줄었다. 이 기간에 전력 수입은 31% 늘어난 반면 수출은 18% 감소했다. 원전이 멈춘 후인 2분기만 보면 수입이 수출을 7.1TWh 상회했다. 1991년 집계를 시작한 후 최대 규모의 순수입이다.
물 부족도 현실화하고 있다. 그간 ‘물 걱정’이 없어 수자원 관련 투자에 소홀했던 대가다.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는 유럽연합(EU) 식수·폐수 기준을 맞추려면 각 회원국이 물 관련 예산을 25% 늘려야 한다며 “유럽에서 물 부족으로부터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나라는 없다”는 그자비에 르플래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환경국 수자원팀장의 경고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