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협 운동에 평생 헌신한 이상호 전 중앙회장 별세

농촌 고리채 현실 보고 신협 주도
1972년 신협법 제정도 이끌어내

이상호 전 신협중앙회장. /연합뉴스

평생 신협 운동을 하며 ‘신협법’ 제정을 이끈 이상호(사진) 전 신협중앙회장이 7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1930년 전남 고흥에서 태어난 이 전 회장은 조선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6·25전쟁 직후인 1957년 농업은행(현 농협중앙회)에 들어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1958년 ‘농어촌 고리채 표본조사’를 한 결과 농촌의 참담한 현실이 농가 고리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민족 자본 육성에 관한 보고서를 쓰는 등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이후 고인의 삶은 1961년 메리 가브리엘라 수녀를 만난 후 바뀌었다. 가브리엘라 수녀는 앞서 1960년 국내 최초의 민간 협동조합이자 현재 신협의 모태가 된 성가신용협동조합을 부산 메리놀병원에서 만든 인물이다. 가브리엘라 수녀를 만난 고인은 신협에서 5일간 교육을 받은 회원들이 저축으로 돈을 모으는 것을 보고 농업은행을 그만두고 신협 운동에 참여해 평생 헌신했다.


고인은 1967년부터 1973년까지 6~11대 신협중앙회 회장을 맡은 후 1979년부터 1983년 또다시 16~17대 중앙회장을 역임하며 우리나라에 신협 운동의 뿌리를 내린 선구자다. 협동조합교도봉사회 일원으로 초기 신협 운동을 주도한 것을 시작으로 연합회 출범, 세계신협협의회(WOCCU)와의 관계 정립, 아시아신협협의회(ACCU) 창립, 신협법 제정, 연수원 건립 등 한국 신협의 중요한 역사에 크게 기여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0년 동탑 산업훈장을 받았다.


특히 고인은 중앙회장으로 재임 당시 신협법 제정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조직이 성장하면서 법적·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려는 각고의 노력으로 1972년 신협법 제정의 결실을 이뤄냈다.


고인은 2019년 6월 신협 60주년을 맞아 진행한 신협중앙회와의 인터뷰에서 “이 사회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잘 배운 사람과 못 배운 사람 할 것 없이 더불어 돕고 사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며 “그런 사회를 건설하는 데 우리 신협이 주된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신협 임직원들에게 신협 운동의 본질을 잊지 말 것을 당부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2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9일 오전 6시 15분이며 장지는 천주교 용인공원묘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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