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은 물론 점서(占書)로 알려진 측면이 있지만 이른바 ‘신의 말을 전해준다’는 무속의 신점과는 전혀 달라요. 주역의 괘는 스스로 뽑고 스스로 해석하는 것이며 괘가 전하는 메시지를 따를지 말지 역시 스스로 결정하게 됩니다. 주역이 가진 이런 ‘자율성’은 서양 정신의학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정신 건강의 척도인 ‘자율성’과도 긴밀하게 맞닿아 있죠.”
수십 년 경력의 정신과 전문의이자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등 50만 부가 넘게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인 양창순 박사(마인드앤컴퍼니 대표)는 최근 ‘주역 심리학’을 발간하며 서울경제신문과 가진 인터뷰에서 주역과 정신의학의 공통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을 지는 사람을 서양 의학에서는 ‘정신적으로 건강하다’고 판단한다”며 “자연 속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64괘로 정리해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할 것인지를 조언해주는 주역을 공부하는 일이야 말로 예방정신의학과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주역은 공자가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지도록 읽었다는 책으로 동양 최고의 경전으로 꼽힌다. 주역만큼 해설이 많은 책도 드물고 당장 서점만 나가봐도 주역을 통해 세상 읽기를 해보겠다며 나선 저자들의 책이 수백 권은 족히 넘는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양 박사의 ‘주역 심리학’은 유독 눈에 띄는데 그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그는 여전히 학문보다는 술사의 영역으로 취급받는 사주명리학을 정신의학과 접목한 ‘명리심리학’을 2020년 펴내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정신의학의 지평을 넓혔다며 호평을 받았지만 우리 의학계가 축적된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의학적 판단을 하는 ‘근거 중심 의학’에 중심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이단’이라는 시선도 있었다. 양 박사 역시 “내가 사이비 학문을 한다며 의사 면허를 박탈해야 한다고 비난하는 사람도 많았다”고 떠올렸다.
그럼에도 명리와 주역을 놓을 수 없었던 것은 이들 학문이 한국인의 힘든 마음을 달래고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칼을 도둑이 쓰면 강도지만 의사가 쓰면 환자가 낫는다”며 “편견과 선입견을 깨면 더 좋은 해법을 찾을 수 있는 법”이라고 했다.
실제로 양 박사는 상담에 명리학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는 “최근 MBTI나 사주 등에 관심을 갖는 내담자들이 부쩍 늘었는데 불안한 미래를 앞둔 상황에서 ‘나 자신’을 더 잘 알고 싶어하는 세태를 반영하는 모습”이라며 “명리는 이른바 ‘동양의 성격학’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잘 이해하도록 도와준다”고 했다. 그는 명리학을 두고 “사람이 변화할 여지를 주는 학문”이라는 말도 했다. 양 박사는 “정신과적으로 ‘당신은 충동 조절 문제가 있다’고 말하면 화를 내던 사람들도 ‘당신은 타고나길 충동적인 경향이 크다’는 명리학적 해석은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며 “변화란 내 문제를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명리학적 접근은 스스로 문제를 깨고 나올 수 있게 해준다”고 덧붙였다.
주역에 대해서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를 자문하는 지혜이자 철학”이라고 평했다. 그렇기에 지금 삶이 잘 풀리지 않아 힘들거나 인생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 번 읽기를 권하기도 했다. 양 박사는 “주역의 핵심은 꽉 차면 이지러지고 기울면 다시 차는 음양(陰陽)론”이라며 “이 철학을 이해하게 된다면 지금 인생이 바닥이라도 좌절할 필요가 없고 아주 잘나가더라도 교만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강조했다.
“주역 64괘의 구성을 보면 모든 것이 다 이뤄졌다는 완성의 의미를 가진 ‘수화기제(水火旣濟)’가 63번째에 있고 영원히 해결되지 않고 대립하는 상태를 뜻하는 ‘화수미제(火水未濟)’가 마지막 64괘로 나옵니다. 모든 것이 완성된 후에도 다시 시작해 또 다른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것이 결국 우리의 삶이라는 의미 아닐까요. 인생은 돌고 돈다는 것, 지금 시험 한 번 망치고 주식 투자 한 번 실패했다고 인생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니 인생을 마라톤처럼 여유 있게 달려도 괜찮다는 것을 주역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