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R&D 투자, 양보다 질 중심으로 혁신할 때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추격자' 벗어나 '선도자'로 변신
글로벌 초격차경쟁서 생존하려면
개도국 시절 전략서 '기어 변속'
R&D투자 늘리되 시스템 혁신을

안준모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코로나19가 종식되면서 한류가 다시 거세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띄게 늘어났고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음반 차트 상위권에는 우리나라 드라마·영화와 가수들이 즐비하다. 한때의 반짝 열풍이 아니라 엄연한 문화적 주류로서 한류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류는 이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개발도상국들이 벤치마킹하는 정책에서도 한류가 있는데 바로 우리나라의 연구개발(R&D) 정책이 그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잿더미 속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뤘고 글로벌 언론사인 블룸버그가 꼽는 세계 1~2위의 혁신 국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같은 국제기구들은 우리나라의 놀라운 성장과 혁신의 저변에 아끼지 않는 R&D 투자가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R&D 투자가 이스라엘에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만큼 적극적 투자가 고속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키가 크고 몸이 커지면 옷을 바꿔 입어야 한다. 개도국 시절에 최적화된 ‘패스트 팔로어(빠른 추격자)’ 전략에서 벗어나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R&D 투자의 혁신이 필요하다. 우리가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려면 R&D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선진 시스템이 필수적이지만 그동안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추격자형 시스템에 머물렀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내년 R&D 분야 예산을 올해의 31조 1000억 원에서 16.6% 줄인 25조 9000억 원으로 책정했다. 이번 정부의 예산 조정으로 R&D 투자 규모가 줄면서 연구 현장에서 여러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이번 기회를 ‘추격자’에서 벗어나 ‘선도자’가 되기 위한 시스템적 혁신이라고 생각한다면 언젠가 겪어야 할 성장통이 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양(量)을 늘리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질(質)에 집중해 예산을 효율적으로 투자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는 ‘시스템 혁신’에 충실해야 한다. 이번 정부안은 세계 최고 수준을 지향하는 혁신적 R&D에 집중 투자하고 국내외 선도 그룹 간 세계 최고 수준의 연구를 전폭적으로 지원함으로써 글로벌 R&D의 저변을 강화하고 미래 전략 기술, 차세대 원천 기술 확보에 재원을 적극 투입하는 혁신적 개선안을 담고 있다. 또 국방과 재난 안전 등 국가의 임무 수행을 위한 필수 R&D 분야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 젊은 과학자의 성장 단계별 지원, 학생 인건비 의무 지출 비율 상향 등 R&D 투자의 내실을 키우는 데 집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중진국의 함정’에 빠지지 않은 거의 유일한 국가로서 한국형 R&D 정책은 여러 나라에 많은 영감을 주고 있다. 다만 우리나라의 성공 방정식이 여기서 빛이 바랠지, 아니면 고쳐 쓴 방정식으로 새로운 도약을 이룰지는 우리에게 달려 있다. 우리나라 R&D 시스템을 선도자형으로 바꾸는 시스템적 혁신을 통해 성공적인 기어 변속을 해야 기술 패권 시대 글로벌 초격차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정부도 이 같은 질적 혁신을 기반으로 다시 R&D 투자를 늘려나감으로써 양과 질의 두 마리 토끼를 다잡는 새로운 성장 전략을 제시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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