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재건국의 정신으로 다시 깨어나야 한다 ?

■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
1948년 건국 뿌리는 자유민주주의
동족상잔 비극 딛고 정체성 지켜내
통일·평화 등의 개념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 기본 가치 훼손해선 안돼


대한민국은 1948년 시작했다. 공산주의 국가인 소련은 해방 후 38선 이북을 점령해 공산화해나갔다.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대한민국은 통일 정부를 세우기 어려워지자 남한에서만이라도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우선적으로 세워야 한다고 판단한 이승만 전 대통령의 남한 단독정부 수립 결단에 의해 건립됐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정통성으로서의 자유민주주의는 6·25전쟁으로 인해 더욱 확고해졌고 확인됐다. 통일이라는 이름으로 동족에 대해 무장 침범을 강행해 사회주의 국가를 건설하려 했던 것이 북한의 6·25전쟁 도발이었다. 그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고, 맞서 싸우며, 지켜낸 것이 무엇보다도 확실한 증거다.


그러한 적통 하의 대한민국에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사태들은 대한민국 수립 이후 달성한 경제성장과 민주화의 달콤함이 대한민국의 정체성 및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기억의 소중함을 얼마나 희석시켰는지를 잘 보여준다. 윤 모 의원의 민단 아닌 조총련 행사 참가나 중국 공산당원 정 모씨의 추모공원 건립 움직임 등이 사례다. 이는 마치 공기의 중요함을 망각하는 것과 같다. 1948년이 대한민국의 시작이라는 것은 자유민주주의가 국가의 이상이기에 공산주의나 사회주의와 확실히 결별한다는 것이며 통일이나 평화 등의 개념에도 우선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반도를 적법한 고유의 영토로 인식하는 대한민국으로서 평화와 안정, 번영을 위해 이북 지역을 실질 지배하는 북한 정권과 통일 및 안정 등에 대해서 협의할 수 있지만 기본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훼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혼란의 배경에는 대한민국의 전사(前史)에 제국주의와 식민지 지배를 반대하고 민족자결을 외치며 자주독립 운동의 계기가 된 3·1운동 정신이 있으며 독립을 추구한다는 같은 목적 하에 잠시 함께했던 좌우 동참의 경험이 자리잡고 있다. 3·1운동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한 러시아의 볼셰비키혁명은 많은 독립운동가들로 하여금 사회주의·공산주의에 대한 동경을 품게 만들었고 그러한 동경과 제국주의에 대한 반감이 오늘날 북한과 중국의 지속적인 선동과 조장에 의해 반일주의, 반미 감정으로 연결되면서 현재의 혼란을 초래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의 오염 처리수에 대한 과학적 분석을 믿고 들으려 하지 않는 행사들도 권력욕에 넘어간 작태이며 이러한 연장선상에 있는 반근대적 무지함 및 폭력성에서 기인한다. 제니퍼 웰시는 ‘역사의 귀환’이라는 책에서 자본주의의 세계화가 빈부격차의 확대를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가 간에도 가져와 포퓰리즘과 테러리즘의 폭주를 조성하고 퍼리드 저카리아가 경고한 ‘비자유주의적민주주의’의 득세를 목도하는 역사를 귀환시켰다고 주장했다.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냉전의 종언과 그에 따른 자본주의의 세계화를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로 보고 ‘역사의 종언’을 제기한 것과는 다른 시각이다.


해방 후부터 6·25전쟁 전까지의 혼돈이 재연되고 있는 현재 한국의 상황도 이러한 웰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 중 하나라고 하겠다. 자유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대립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보다 더 오래되고, 특히 아시아에서는 중국 시진핑의 독재 체제 성립에서 보듯 문화적으로나 전통적으로 뿌리 깊은 권위주의이기에 역사가 또 흘러가기 쉽다고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것은 이처럼 수많은 함정들을 가지기에 지난한 작업이다. 근대 자유민주주의가 깨어 있는 개인, 이성의 개인을 출발점으로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리석음도 죄라는 말이 있다. 중국식 민주주의면 어떠냐는 어리석음을 확연히 차단할 수 있도록, 자본주의의 무도함도 반성하며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고 경종을 울려야 하는 시대 상황이다. 대한민국을 이처럼 한민족을 넘어선 자유민주 정신의 것으로 할 때 한국의 미래도 더욱 견고하고 확장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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