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북한과 러시아의 밀월 관계가 공고해지면서 중국의 셈법이 복잡해지게 됐다. 중국은 그간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지렛대로 삼아 한국·미국·일본에 대한 외교·안보 협상력을 한층 키울 수 있었는데 러시아가 끼어들면 중국의 북한에 대한 입김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북러 간 밀착을 견제하자니 한미일 안보·경제협력에 맞불을 놓을 우군을 잃을 수 있어 딜레마의 상황에 빠질 수 있다.
12일 외교 안보 당국자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북러 간 밀착을 마냥 환영하기 어려운 입장으로 북러가 밀착하는 만큼 한미일 협력이 강화되면서 대중 압박도 함께 커질 수 있는 우려가 있다”며 “특히 러시아와 비교하면 북중 간에는 경제협력 분야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어 북러의 군사 관계가 깊어지면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왕선택 한평정책연구소 글로벌 외교센터장도 “중국 입장에서 북한이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가 커진다면 중국의 북한 관련 영향력이나 동북아 지역에서의 영향력이 그만큼 줄어들어 고민이 깊어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당장 미국을 견제해야 하는 중국으로서는 북한·러시아와 일정 부분 협력을 강화할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를 넘어서려는 북러 간 무기 거래를 공개적으로 지지하거나 동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라는 게 당국 및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특히 내부적으로 경기 침체를 겪고 있는 중국으로서는 서방권과 경제적 마찰을 줄여야 하기 때문에 북러 간 군사 협력을 지지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 경쟁에 따른 경제적 압박이 커진 중국이 북러 밀월 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유럽 국가까지 적으로 돌릴 수 있는 상황이라 상당히 곤혹스러울 것”이라고 분석했다.
외신들도 중국의 입장이 매우 미묘했다고 진단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이번 방러로 “북한의 후견역을 자임하는 중국이 북러의 급격한 접근으로 북한에 대한 영향력 약화를 우려할 수밖에 없다”며 “특히 북중러를 중심으로 하나의 진영으로 뭉치는 움직임까지 보이면 대미를 포함한 중국의 세계 전략에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월스트리저널(WSJ)은 “북러와 달리 중국 경제는 어려움 속에서도 국제무역 체계에 크게 의존하고 있어 중국은 북러 협력에 완전히 참여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고 보도했다.이런 상황에서 러시아가 개최한 동방경제포럼(EEF)에 참석하는 중국으로서는 대외적으로는 중국과 협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도 구체적이고 실무적인 협력에 있어서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및 서방권의 레드라인을 넘지 않는 선에서 수위 조절을 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12일 EEF에 중국 대표단장으로 참석한 장궈칭 중국 부총리와 회담하고 ”러시아와 중국 관계가 최근 몇 년 동안 전혀 유례 없는 역사적 수준에 도달했고 이런 협력을 앞으로도 계속해나갈 것”이라며 양국 간 경제협력에도 만족을 표시했다고 러시아 매체가 보도했다. 이에 장 부총리도 “2000억 달러 교역 목표가 올해 내 조기 달성될 것”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