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당역 스토킹 살인' 1년] "또 찾아올까봐 불안"…멀기만 한 '스토킹 구금'

스토킹 범죄 올해 1.9만건…최고치 전망
피해자 보호 위해 "가해자 구금" 요청해도
법원은 여전히 미온적…45%는 기각 처리
경찰 직권 명령으로 '접근금지' 통보해도
10명 중 1명은 위반…스토킹 피해 계속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 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 공간에서 한 시민이 피해자를 추모하고 있다. 연합뉴스

“가해자가 언제 또 찾아와 괴롭힐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무섭고 끔찍한 시간을 보냈어요. 피해를 당한 후 직장을 그만뒀고 현재는 혼자 집 밖을 돌아다니지도 못하게 돼 삶 자체가 완전히 망가졌어요.” (스토킹 피해자 20대 허 모 씨)


지난해 9월 14일 20대 여성 역무원이 2년간 스토킹 피해에 시달리다가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화장실에서 근무 중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 지 1년이 흘렀다. 정부는 피해자 보호와 관련된 제도적 개선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스토킹 범죄가 나날이 증가하는 와중에도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치는 여전히 부실한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경찰청이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에도 스토킹 사건이 꾸준히 발생하면서 올해 최고치를 찍을 것으로 전망됐다. 경찰이 112 신고 시스템 내 ‘스토킹’ 코드를 신설해 관련 범죄 발생을 집계한 이래 스토킹 범죄는 2021년 1만 4509건을 기록하면서 처음으로 1만 건을 넘어선 후 2022년 2만 9565건을 돌파했다. 이후 올해는 7월 말까지 스토킹 사건이 이미 1만 8973건 발생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추세라면 스토킹 범죄는 지난해 기록을 가뿐히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사진 설명


문제는 스토킹 범죄가 급증하는 와중에도 피해자와 가해자 간 분리 조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경찰은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법원에 잠정조치를 신청할 수 있다. 법원이 이 같은 내용을 받아들일 경우 스토킹 범죄 가해자는 서면 경고(1호), 100m 이내 접근금지(2호), 전기통신 이용 접근 금지(3호) 처분, 유치장 또는 구치소 구금(4호) 등 크게 네 가지 처분에 처해진다. 하지만 법원은 경찰이 스토킹 피해자를 보호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수단인 ‘구금’ 조치를 요청해도 여전히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올해 발생한 스토킹 사건 중 659건에 대해 “피의자를 구금해달라”는 내용의 잠정조치를 신청했는데 법원은 이 중 367건만 인용했다. 절반을 조금 넘는 수치다.



신당역 살해 피의자 전주환이 남대문경찰서에서 검찰로 이송되고 있다. 경찰은 신당역 여자 화장실에서 스토킹하던 20대 여성 역무원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한 전주환을 검찰로 송치했다. 연합뉴스

법원이 잠정조치 처분을 인용했다고 하더라도 가해자들 중 일부는 이 같은 조치를 가볍게 어기고 위반하는 경우도 여전하다. 경찰청이 권인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올해 법원에서 1~4호 처분을 받은 가해자 중 7%(364건)는 잠정조치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직권 명령으로 스토킹 가해자에게 ‘주거지 100m 이내 접근 금지’와 ‘전기통신을 이용한 접근 금지’를 통보할 수 있는 제도인 긴급응급조치 역시 올해 2071건 시행됐으나 이 중 189건은 가해자가 조치를 어긴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경찰은 가해자 격리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상황에 따라 경찰이 임의로 긴급잠정조치를 취한 뒤 사후 승인을 받는 제도를 시행해왔으나 이마저도 위반한 비율이 9.1%에 달한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분리되지 않는 사이 피해자들은 스토킹 피해로 인해 불안에 떨어야 했다. 최근 스토킹 가해자가 구속 송치되기 전까지 피해에 시달렸던 20대 여성 강 모 씨는 “접근 금지 명령이 여러 번 통보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주거지 주변을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어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 등에 버젓이 게시했다”면서 “수시로 살해 협박을 하는가 하면 염산 테러, 청부 살인, 신상 유포를 하겠다며 위협해 정말 무서운 시간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용 의원은 “스토킹 범죄는 보복의 우려가 매우 높고 살인까지 연결될 수 있는 범죄이기 때문에 경찰을 비롯한 수사·재판 기관은 피해자 안전 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지만 여전히 잠정조치 4호 기각률이 높은 상태”라며 “피해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피해자로부터 가해자를 즉각적으로 분리하고 격리하는 잠정조치 4호에 대해 법원이 적극적으로 승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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