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배럴당 60달러대였던 국제유가가 어느덧 90달러에 육박할 정도로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4분기 원유 부족분이 하루 330만 배럴에 달할 것이라고 밝힌 데 이어 주요 산유국인 리비아의 최악의 홍수까지 겹치면서 유가는 11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국제유가가 세 자릿수(배럴당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관측도 커지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블룸버그에 따르면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은 배럴당 88.84달러로 전날보다 1.8% 오르며 지난해 11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브렌트유 가격도 92.06달러로 1.6% 상승하며 역시 10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WTI와 브렌트유는 13일 아시아 시장에서도 소폭 오른 채 거래됐다.
이는 OPEC이 이날 발간한 월례 보고서에서 4분기 세계 원유 시장이 하루 330만 배럴의 공급 부족에 직면할 것이라고 발표한 여파다. OPEC 13개 회원국은 이번 분기 지금까지 하루 평균 2740만 배럴을 생산했다. 이는 소비자 수요에 비해 약 180만 배럴이 적은 양이다. 4분기에는 원유 수요를 모두 충족하려면 3070만 배럴을 생산해야 하는데 현재 생산량으로 봐서는 330만 배럴이 부족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블룸버그는 자체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원유 공급 부족분이 2007년 이후 16년 만에 최대 규모라고 진단했다.
OPEC은 고물가와 금리 상승, 지정학적 긴장 등의 요인이 있지만 세계경제가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항공 여행 및 차량 이동이 회복되며 석유 수요가 늘어날 것으로 봤다. 반면 공급 위축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달 초 하루 100만 배럴의 감산 조치를 12월까지 연장했고 러시아도 30만 배럴의 수출 축소 조치를 역시 연말까지 유지하기로 했다.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사우디의 빈 살만 왕세자가 추진하는 네옴시티 등의 사업 자금 조달을 위해서는 사우디가 배럴당 약 100달러의 유가를 바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리비아를 덮친 대홍수로 원유 수출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우려도 유가를 끌어올렸다. OPEC 회원국이자 8월 하루 100만 배럴의 원유를 생산한 리비아는 홍수로 동부 원유 수출 터미널 4곳을 폐쇄했다.
WTI 기준으로 국제유가가 불과 3개월 새 33%나 급등하면서 세계 곳곳에서 다양한 파장을 낳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장 미국의 휘발유 가격이 갤런당 4달러에 육박해 내년 11월 재선에 도전하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악재가 될 수 있다. 고물가를 잡기 위해 이미 기준금리를 빠르게 올린 각국 중앙은행이 추가로 금리를 올려 세계경제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우려도 있다.
전문가들은 올해 상반기와 같은 ‘저유가 시대’는 다시 오지 않고 유가가 고공 행진할 것이라는 관측을 주로 내놓고 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는 “향후 몇 달간 글로벌 원유 재고 하락이 유가를 지지할 것”이라며 4분기 브렌트유 가격 전망을 배럴당 86달러에서 93달러로 올려 잡았다. 6월 호주뉴질랜드은행(AZN)은 “연말까지 브렌트유가 10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고 봤다. 최근 골드만삭스는 기본 시나리오는 아니라면서도 브렌트유가 내년 12월까지 107달러로 상승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다만 JP모건과 RBC캐피털은 추가 상승 모멘텀이 소진됐다는 이유 등으로 현 상황에서 유가가 100달러에 도달할 것으로 보지 않는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