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도 법률·제도에 근거해야 할까. 유키 세이지 일본 암호화폐거래소협회(JVCEA) 전무이사는 그렇다는 입장이다.
유키 이사는 지난 7월 일본 도쿄 지요다구의 JVCEA 사무실에서 디센터와 만나 ‘한국의 자율규제가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일본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인 JVCEA는 32곳의 회원사를 대표해 금융 당국으로부터 공식적으로 인가받아 가상자산 상장 등에서 강력한 권한을 행사한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자율규제 기구의 역할은 백 번 강조해도 모자라다. 장 마감 없이 24시간 동안 거래되고 블록체인 기술도 높은 전문성을 요구하는 만큼 규제·입법 기관이 직접 나서기는 무리다. 현장에서 전문적인 지식을 갖춘 업계에 일정 부분 업무를 위임하고 이들의 목소리를 듣는 셈이다. 유키 이사는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의 핵심은 회원사와 금융 기관끼리 원활히 소통하게 하는 ‘중간자’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국내 가상자산 자율규제의 현주소는 어떠한가. 국내 가상자산 자율규제 기구인 디지털자산 거래소 공동협의체(DAXA·닥사)가 지난해 출범했지만 상장 폐지했던 코인을 회원사 한 곳이 단독으로 재상장 하는 등 출발부터 삐걱댔다. 최근 자금세탁방지 분과를 신설해 자율규제 기능을 고도화하고 있다지만 업계가 이를 체감하는지는 미지수다. 박혜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교수는 “기업이 어떤 기준으로 사업을 해야 하는지 여전히 오리무중”이라며 “가상자산 거래소끼리 자율규제를 담당하는 것이 맞는지도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가상자산 업계를 대표해 중간자 역할을 해야 할 기구가 업계의 신뢰조차 받지 못하고 명확한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결국 자율규제 기구의 존재 의의가 제도적으로 뒷받침돼야 한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본 금융청은 JVCEA를 자금결제법상 자율규제기관으로 인정해 금융기관에 준하는 권한을 위임했지만 닥사는 법정 기구가 아니며 구속력이 없다. 황현철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어느 기관이 자율규제를 담당하고 어떻게 감독하는지에 대한 규정이 없어 업무에 대한 기준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금융투자협회나 은행연합회처럼 법정 기구로 논의가 된다면 어느 정도 구속력이 생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오훈 차앤권 변호사는 “규제도 당근과 채찍이 적절히 섞여야 하는데 현재 업계 입장에서는 자율규제를 준수할 당근(유인책)이 전혀 없다”며 “법정 기구로 등록되면 가상자산 상장과 분쟁 해결까지 자율규제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고 논란도 최소화할 수 있다”고 전했다. 규제 당국이 제도적으로 자율규제의 방향성을 제시해 업계가 규칙을 잘 준수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감독원도 지난 5월 업계에서 자율규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커지자 정책 컨설팅을 지원하는 등 자율규제를 개선키로 한 상황이다. 의회와 정부, 업계가 힘을 합친 일본처럼 이제는 입법 기관이 나설 차례다. 규제 공백으로 지금도 수많은 투자자들이 시세조종과 각종 스캠(사기)에 시달리는 등 명분은 충분하다. 제도에 기반한 자율규제 기구를 통해 ‘개인의 투기판'으로 몰락한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화에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