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취 열량보다 많이 소비하면 살이 빠진다는 게 체중 감량의 기본이잖아요. 의학 지식을 총동원해서라도 다이어트의 정석을 보여주겠다 마음 먹었죠. ”
외모를 중시하는 현대사회에서 비만인에 대한 시선은 삐딱하다. 남들보다 몸무게가 조금 더 나가는 게 개인의 잘못도 아닌데 ‘게으르다’거나 ‘의지가 약해 보인다’, ‘자기 관리를 잘 못할 것 같다’는 편견과 싸워야 한다. 미혼 여성이라면 ‘그래서야 연애를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걱정을 빙자한 핀잔마저 웃어넘기는 쿨한 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결심했다. ‘먹고 싶은 것을 참지 않고도 살을 뺄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증명해 보이리라’.
복수의 연구에 따르면 100명 중 2~3명을 제외하곤 체중 감량 후 다시 원래의 체중으로 돌아가는 요요 현상을 겪는다. 한국인의 하루 권장 섭취 칼로리는 성인 여성 기준 2000kcal. 요요 현상을 예방하기 위해 매일 2000kcal를 꼬박꼬박 챙겨 먹었고 대신 강도 높은 운동을 병행했다. 부상 투혼을 불사하고 생활체육지도자 자격증까지 취득하면서 식단관리와 운동에 매진한 끝에 35kg이 빠졌다. 성인이 되고나서 몸무게가 가장 적게 나갔던 순간이다.
하지만 체중을 유지하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옷태가 난다’며 호들갑을 떠는 지인들과 만나 우쭐해지는 건 잠시 뿐. ‘예전에 너무 심하긴 했다’며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에 상처를 입었다. 하하호호 즐거워 보이는 만남을 가진 뒤 집으로 돌아오면 폭식을 하고 울다가 잠드는 나날이 반복됐고 5년 뒤 체중이 원상복귀됐다. 김유현 차의과학대 차움건진센터 삼성분원 교수(가정의학과 전문의)의 이야기다.
김 교수는 “비만이 생활습관 교정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고 배웠다. 하지만 수차례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인체의 생리적인 성질을 거스르기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고 털어놨다. 혈액에 떠다니던 지방 성분이 지방세포에 차곡차곡 쌓이면 몸 안에 염증반응이 많아진다. 인슐린 저항성 등 병리적 변화가 심해지면서 당뇨병, 각종 심혈관질환 등이 일어날 위험도 치솟는다. 지방세포는 지방을 저장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설 만큼 비대해지면 지방세포가 늘어나는데 그 단계마저 넘어서면 혈액 내 남아도는 지방 성분들이 혈관을 타고 근육이나 간, 심장, 췌장 등에 직접적으로 쌓이면서 곳곳에 건강 이상신호가 나타난다. 단순히 고칼로리 음식을 먹고 적게 움직이는 생활습관 탓이 아니라 유전적 소인이나 생물학적 요인에 의해 비만한 이들도 많다.
김 교수는 “고도비만 환자들에게 혼자 힘으로 체중을 감량하라는 건 생리주기를 스스로 조절하라는 것과 같다”고 잘라 말했다. 그가 ‘고도비만’ 의사를 자처하며 10여 년째 블로그, 유튜브 등을 통해 활동하는 것도 ‘비만은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병’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서다.
비만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심각한 건강 문제로 떠올랐다. 세계비만연맹은 2020년 20세 이상 비만 인구가 8억 명을 넘어섰고 오는 2035년 15억 명을 돌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인 성인 남성의 비만 유병률은 44.8%, 여성은 29.5%까지 치솟았다. 대한비만학회 국제학술대회(ICOMES 2023) 참석차 방한한 션 와튼 박사(캐나다 와튼메디컬클리닉 내과 전문의)는 “체중감량 전이라도 인정과 지지를 받을 가치가 충분하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며 “비만인에 대한 편견이 바뀌어야 비로소 적절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조언했다. 사회에 깊숙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비만에 대한 차별을 바로 잡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와튼 박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만 인구가 늘었다는 조사 결과에서도 비만의 책임을 운동을 하지 않은 이들에게 돌리려는 편향성이 드러난다”며 “그러한 비만 낙인이 불안 심리를 자극해 운동을 하지 않고 고칼로리 섭취로 이어지는 등의 악순환을 야기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비만 관련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부작용이 현저히 적은 데도 체중감량 효과가 뛰어난 신약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미국, 캐나다 등에서 활발하게 처방되고 있는 글루카곤 유사펩타이드(GLP-1) 유사체는 임상연구에서 20%가 넘는 체중감량 효과를 나타냈다. 약물만으로 비만대사수술에 버금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GLP-1 외에 이중, 삼중으로 수용체를 자극해 체중감량 효과를 높이거나 알약 형태로 편의성을 높인 비만 신약 개발도 활발하다.
와튼 박사는 “효과적인 비만 치료옵션이 늘어나면서 비만이 병이라는 인식이 증가해 다행스럽다” 면서도 “체중감량 효과가 지나친 주목을 받으면서 정상 체중인 데도 미용 목적으로 약물을 사용하려는 수요가 늘어날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몸무게(kg)를 키의 제곱(m)으로 나눈 체질량지수(BMI)는 편의상 널리 사용될 뿐, 약물이나 수술을 통한 비만 치료 기준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BMI가 높더라도 대사적 문제가 없다면 치료가 불필요할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BMI에 연연하기 보다는 심장문제 등 동반질환이나 내장지방에 의한 염증반응 유무를 따져봐야 한다”며 “규제당국의 정책을 펼칠 때도 이러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