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EA 아우르는 英선 모든 딜 가능"…1300조 IB시장 공략한다

[런던 누비는 K금융]
<상> 국경 넘어 CIB로 승부수
英, 브렉시트에도 글로벌 위상 여전
신한銀 EMEA본부 920억 딜 주선
우리, IB여신 확대…英 외 비중 늘려
KB는 런던지점서 50명 충원·대형화
하나銀도 유럽·중동 IB자산 50%↑

영국 런던의 한 고층 빌딩에서 내려다본 ‘더 시티 오브 런던’ 전경. 사진=조윤진 기자

KB국민은행(위쪽부터), 신한은행, 우리은행, 하나은행 런던지점. 사진=조윤진 기자

“7만 5000명의 금융 산업 종사자들이 런던을 떠날 것입니다.” 2016년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브렉시트)를 결정하면서 당시 전문가들은 런던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았다. 실제로 일부 금융회사는 브뤼셀·프랑크푸르트 등지로 이동하기도 했다. 하지만 7년여가 지난 지금도 런던은 여전히 뉴욕·홍콩과 함께 ‘3대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는 그 위상이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에 발맞춰 국내 은행들도 런던지점의 역할을 강화하고 규모를 키우며 글로벌 기업투자금융(CIB) 사업 확대에 나서면서 서서히 성과를 거두고 있다.





17일 금융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 런던지점의 영업이익은 지난해 처음으로 1억 달러를 넘긴 1억 30만 달러(약 1330억 원)로 집계됐다. 코로나19 발생 첫해인 2020년 록다운을 겪으며 이들 지점의 영업이익은 5340만 달러로 전년 대비 14% 역성장했지만 이후 2년 만에 2배 가까이 성장했다. 당기순이익과 총자산, 대출 자산 등 주요 지표들 역시 지난해 일제히 불었다. 개별 은행 지표로 봐도 2020~2022년 3년간 런던지점의 성장세는 뚜렷한 우상향 곡선을 그렸다.


국내 은행들이 런던에서 호실적을 낼 수 있었던 것은 각 은행이 ‘글로벌 금융 중심지’라는 런던의 기능을 극대화하며 국경을 넘나드는 기업금융(CB) 및 투자금융(IB)에 적극 나섰기 때문이다. 일례로 신한은행은 2020년 말 유럽·중동·아프리카(EMEA) 지역본부(RH·Regional Head)를 설치하고 은행 해외 거점 간 시너지 강화에 나섰다. 런던지점을 필두로 법인이 있는 독일과 카자흐스탄, 두바이지점, 헝가리사무소 등 총 5개 지사로 구성된 EMEA RH는 글로벌투자금융(GIB), 글로벌거래금융(GTB), CB 등 5개의 모듈을 중심으로 운영 및 관리되고 있다.


지금까지가 꾸준히 한국 은행의 이름을 알리고 활동 영역에서 경쟁력을 키워나가는 등 ‘인내의 시간’이었다면 최근에는 그동안의 노력이 성과로 가시화되고 있다. 신한은행은 EMEA RH 제도 도입 후 6500만 유로(약 920억 원) 규모의 딜을 주선했다. 신한은행과 유럽계 현지 은행, 한국계 2개 은행 등이 대주단으로 참여한 이 거래의 경우 딜 소싱은 헝가리사무소가, 금융 주선은 두바이지점이, 부킹 및 자산관리는 런던지점이 맡았다. EMEA RH를 이끌고 있는 우상현 신한은행 런던지점 본부장은 “해당 딜은 한 개 지점 단독으로 절대 진행할 수 없었다”며 “유럽 현지 은행 신디케이션을 위한 두바이지점의 네트워크, 런던지점의 IB 부문 노하우 등 EMEA 채널 간 장점을 활용했다”고 평가했다.



KB국민은행(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 신한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런던지점 사무실 전경. 사진=조윤진 기자

최근 “기업금융 명가를 재건하겠다”고 천명한 우리은행 역시 런던지점을 앞세워 EMEA 지역 공략에 나서고 있다. 전수일 우리은행 런던지점장은 “런던지점은 EMEA를 아우르는 딜을 전부 취급할 수 있어 지역적 한계가 거의 없는 데다 산업 전반적으로 다양한 딜을 시도할 수 있다”며 “또 규모가 크지 않은 딜은 본점이 아닌 싱가포르 소재 아시아심사센터를 통해 승인받고 있어 신속한 의사 결정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우리은행의 대출 자산은 올해 상반기 말 기준 16억 달러(약 2조 원)로 그중 절반 이상인 8억 6000만 달러는 IB 여신이 차지했다. IB 대출에서 영국 외 지역이 차지하는 비중은 70%에 이른다. 국민은행의 경우 EMEA 지역을 커버할 수 있는 거점이 런던지점 한 곳인 만큼 런던지점에만 50여 명의 인원을 확충하는 대형화 전략을 취하기도 했다.


4대 은행 중 해외에 가장 많은 거점을 보유한 하나은행도 올해 초 유럽·중동, 미주, 아시아 등 총 3개의 지역본부를 설립했다. 이 중 런던지점이 유럽·중동 소재 12개 채널을 이끌고 있다. 최성호 하나은행 런던지점장은 “자금 공급 등 영업 지원뿐 아니라 현지 금융기관·IB와의 네트워크 강화 등을 신속하게 이뤄낼 것”이라고 설명했다. 최 지점장은 “유럽과 중동의 IB 금융 규모는 1조 달러(약 1330조 원)에 이른다”며 “하나은행 유럽중동본부는 이 지역 IB 자산 규모를 매년 50% 이상씩 늘리면서 2025년 말 IB 자산을 현재 11억 달러 수준에서 30억 달러까지 3배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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