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불교에 ‘템플스테이’가 있는데 유학(유교)에서 ‘서원스테이’가 안 될 이유가 없지 않을까. 문화재청과 한국문화재재단이 이번에 ‘서원스테이’에 도전했다. 국내 서원 가운데서도 가장 유명한 경상북도 안동 병산서원(屛山書院)에서다.
‘서원’이라는 것은 조선 시대 지방에서 선비들이 선현들을 모시고 동시에 후학을 교육하는 사립 기관이다. 병산서원은 특히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시는 곳이다. 충무공 이순신을 후원해 임진왜란을 이기고 ‘징비록’을 쓴 바로 그분이다.
병산서원은 시초는 고려 시대의 풍악서당인데 이를 1575년 서애 선생이 안동의 병산 맞은편으로 옮기면서 ‘병산서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05년 중건했으며 1863년 사액(賜額·임금으로부터 편액을 받음)됐다. 현재 유네스코 세계유산이기도 하다.
한국문화재재단은 ‘2023 세계유산축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올 9월 초부터 중순까지 ‘서원스테이’ 시범사업을 진행했다. 국내 역사상 서원스테이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이미 많은 사람에게 친숙한 템플스테이는 21년의 역사를 자랑한다.
1박 2일 병산서원 서원스테이에서의 첫 일정은 서원 내 사당인 존덕사(尊德祠)를 찾아 인사를 올리는 것이다. 존덕사는 병산서원에서 가장 안쪽에 있고 그만큼 엄숙하고 중요한 공간이다. 바로 서애 선생을 모시는 곳으로 위판에는 영의정문충공서애류선생(領議政文忠公西厓柳先生)이라고 적혀 있다. 서애 선생의 최고 벼슬은 영의정이었다.
저녁 식사는 동쪽에 있는 고직사에서 맛볼 수 있다. ‘온휴밥상’이라는 선비의 저녁상을 모티브로 했다고 한다. 실제 전복비빔밥, 낙지소고기탕, 문어숙회, 수삼돼지고기 수육 등으로 구성된 식사는 서애 선생 종가의 상차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 이번 행사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마련한 김동기 셰프는 “외국인이 와도 호불호 없이 즐길 수 있도록 다양한 재료와 요리법을 활용해 구성했다”고 소개했다.
병산 너머로 해가 지면 병산서원의 상징이기도 한 누정 ‘만대루(晩對樓)’에서 별유사가 전하는 성리학을 들을 수 있다. 조촐한 다과상도 즐길 수 있다. 존덕사와 함께 만대루는 보통 때의 경우 출입이 금지된다. 만대루에서 보는 경치는 서원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에게 특혜인 셈이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면 병산서원 스테이가 제공하는 조반인 ‘삼색온죽상’을 만날 수 있다. 마·시금치·흑임자 등 세 가지 채소로 구성된 부드러운 식사다. 그리고 아침 시간은 자유다. 입교당 마루에 앉아서 편안히 자연을 느낄 수도 있고 인근 강을 따라 산책을 즐길 수도 있다. 안동 하회마을까지 약 4㎞에 걸쳐 ‘유교문화의 길’이 꾸며져 있다.
병산서원 스테이는 유교 및 선비 문화를 바로 그 현장에서 만날 수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전통문화 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병산서원 자체가 안동 등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시골이다. 또 서원 앞을 병풍처럼 펼쳐진 병산은 낙동강을 끼고 돌면서 우리나라 최고 절경 중에 하나를 자랑한다.
도시 문명의 이기와 세상사, 사람들에 방해 받지 않는 고요함은 심신을 맑게 한다. 특히 비가 온 직후나 아침에 피어 오르는 물안개는 산수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하지만 ‘스테이’로서 해결해야 할 점도 없지 않다. 우선 ‘서원스테이’의 가치 지향에 대한 문제다. 오늘날 유교 혹은 유학과 서원에서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깨달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다담을 진행한 류한욱 별유사는 “사람의 됨됨이를 바로 함을 배우는 것”이라고 전했다. 유교나 성리학 전파가 아닌 인성 교육에 치중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유학(유교)이 점점 쇠퇴하는 상황에서 류 별유사처럼 강사 요원을 꾸리는 것도 앞으로는 쉽지 않다. 류 별유사는 서애 선생의 후손이라고 한다. 직장 생활을 중간에 접고 안동에서 유학을 가르치고 있다. 별유사는 서원 등 전통 기관의 관리 자리다.
실질적으로 서원스테이의 애로 사항은 맞춤 시설 부족이다. 병산서원의 경우도 문화재여서 현재 증개축이 어렵다. ‘스테이’를 위한 숙박 공간이 부족하고 샤워 시설, 화장실이 부실하다. 이번 병산서원 서원스테이 시범 프로그램에서도 서원 내부의 동재·서재 등 숙소에 한번에 겨우 10여명 정도가 묵을 뿐이다. 샤워 시설이 없고 소규모 화장실도 건물 밖에 있다.
반면 템플스테이의 경우 불교적 세계관을 학습하는 데 무리가 없고 또 다수의 스님이 이미 거주해 편의 시설이 상당히 갖춰져 있다.
재단 측은 이런 문제들을 적극 검토하고 서원스테이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재단 관계자는 “내년 병산서원에서 5월, 9월 등으로 추가해서 행사를 진행할 수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통역 등 서비스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글·사진(안동)=최수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