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묘하게도 언젠가는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 ‘이겼다’는 말이 다음의 승리까지 보장하지 않기 때문이다. 인생은 단판 승부가 아니다. 첫 승부에서 승리한 이가 오히려 더 멀리 가지 못할 때도 많다. 실패가 두려워 몸을 아끼게 되고 한 번 경험한 승리의 공식만을 좇게 되는 오류에 빠질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면접을 볼 때도 대뜸 장점을 나열하는 면접자보다 어떤 실패의 경험이 있었는지를 말하는 이에게 귀가 더 기울여진다. 보완하려 애쓰는 과정에서 우리는 한 단계 더 도약하게 될 테니.
이렇듯 약간의 실패나 결함은 인간을 더 성장하게 만든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실패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주지 못하는 모습이다. 국회 스타트업 연구 모임 ‘유니콘팜’의 대표를 맡으면서 너무나도 많은 도전과 실패를 목격한다. 그중 실패 없는 성공은 단 하나도 없다. 그리고 어쩌면 성공보다도 값지고 기꺼운 실패가 더 많다.
그 모든 실패들이 ‘졌잘싸’가 됐으면 좋겠다. 졌잘싸가 가능한 사회여야 도전자들이 넘실대는 법이다. 실리콘밸리가 도전과 혁신의 천국인 이유는 실패를 자산으로 여기는 문화가 있어서다. 규모가 작은 북유럽 국가들에서 연신 글로벌 기업이 탄생하는 것 또한 실패한 이들도 사회적으로 보호받기 때문이다. 어느 사회에나 도전의 DNA를 가진 이들은 많다. 한국에서도 실패가 삶의 파괴로 연결되지 않는다면 더욱 다양한 혁신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들 것이다.
아직 실패를 장려하지 못하는 사회임에도 도전의 DNA를 가진 이들은 스스로 실패를 공부하며 한국 스타트업의 황금기를 만들어냈다. “창업하는 게 너무 즐거워 열 번 넘어져도 열 한 번 오뚝이처럼 일어났다”는 ‘크몽’의 창업자 박현호 대표도 그중 하나다. 12년차 프리랜서 마켓 플랫폼 ‘크몽’은 수없이 생겨난 유사한 서비스 사이에서도 여전히 높은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 비결은 실패다. 열 번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들이 지금과 같은 투자 혹한기 속에서도 크몽을 촘촘히 지탱하고 있다.
핀테크 산업 선봉에 있는 토스의 창업자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는 아예 “실패 스타트업을 표방한다”고 말한다. 창업자 본인이 여덟 번의 실패 끝에 토스로 성공했기에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를 스스로가 아는 것이다. 물론 이들은 운이 좋은 사례다. 창업은 실패했지만 삶은 파괴되지 않아 도전을 이어갈 수 있었으니 말이다. 현실에는 실패의 여파를 버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도전을 마무리한 이들이 너무나도 많다. 실패 이후의 삶이 두려워 도전하지 못하는 이들까지 합한다면 훨씬 많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사회적 손실이다.
이 모든 실패와 실패에 도전하지 못한 마음들이 너무나도 아깝다. 그래서 필자는 꿈꾼다. 미국만큼 혁신적이고, 유럽만큼 보호적인 나라를. 누군가는 이상주의자라고 비웃을 수 있다. 그럴지언정 창업자들이 뒤를 믿고 마음껏 도전할 수 있도록, 그 풍요를 모든 국민이 누릴 수 있도록 그 길을 열어내는 게 정치의 역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