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종 진돗개 찾아라"…사흘간 진도 뒤진 이건희의 노력, '애견문화' 꽃피웠다

이건희 회장 3주기 앞두고
애견문화 공헌 집중 조명
선대회장, 사흘간 진도서 수소문
10년 노력 끝 순종 한쌍 만들어내
세계견종協도 '진돗개=한국산'인증
첫 시각장애인 안내견학교도 설립
'보신탕'이미지 벗고 애견문화 선도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진돗개를 보살피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고(故)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의 3주기(10월 25일)가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이 선대회장의 애견 사업이 다시 한번 주목받고 있다. 우리나라가 개를 먹는 보신탕의 나라에서 세계적 안내견을 키워내는 나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배경에 이 선대회장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삼성과 재계 등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이 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때는 1953년 아버지인 이병철 삼성 창업회장의 뜻에 따라 11세의 나이로 일본에 유학을 떠나면서부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부모님의 곁을 떠나 학업에 매진하면서 반려견으로부터 정서적 위안을 얻었다는 것이다.


그의 반려견 사랑은 1969년 중앙일보 이사 시절 진돗개 보존 사업에 직접 뛰어들면서 개인 차원을 넘어 국가 차원으로까지 확대되기 시작한다.



이건희 삼성전자 선대회장이 리트리버를 쓰다듬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이 선대회장의 에세이집인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에는 그가 진돗개 순종을 복구해내기 위해 쏟아부은 노력이 자세하게 담겨 있다. 그는 1969년 세계견종협회가 진돗개 원산지를 한국으로 증명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곧장 진도로 내려가 사흘을 머물면서 진돗개 순종이 있다는 집을 직접 수소문해가며 30마리를 사들였다.


이 선대회장은 에세이에서 “사육사와 하루 종일 같이 연구하고 외국의 전문가를 수소문해서 조언을 받아가며 순종을 만들어내려고 애썼다”며 “처음 들여온 30마리가 150마리로 늘어날 때쯤 순종 한 쌍이 탄생했다”고 말했다. 10여 년의 노력 끝에 순종 한 쌍을 만들어냈고 진돗개 300마리를 키우며 순종률을 80%까지 올려놓았다. 1975년에는 진돗개애호협회를 설립, 초대 회장에 취임하며 진돗개 경연대회를 열고 당시로서는 파격적으로 대형 냉장고를 1위 경품으로 내걸었다.


1979년에는 세계견종협회로부터 진돗개의 한국산 인증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 만약 이 선대회장의 노력이 없었던 상태에서 진돗개 교잡이 수십 년간 더 진행됐다면 순종 진돗개의 명맥이 끊길 수도 있었던 셈이다.



이재용(왼쪽) 삼성전자 회장과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19일 열린 삼성안내견학교 30주년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1988년 서울 올림픽 때는 영국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이 한국의 보신탕 문화를 두고 시위를 벌일 계획이라는 사실을 파악한 뒤 협회 회원들을 서울 자택으로 초청해 한국 애견 문화의 수준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는 영국 동물보호협회 회원들이 시위를 취소하는 데 결정적 계기가 된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는 “마누라 빼고 다 바꿔보라”는 이른바 프랑크푸르트 선언을 내놓은 1993년 국내 최초로 시각장애인을 위한 ‘삼성안내견학교’를 설립해 자신의 개인적 취미를 사회복지 영역으로까지 확장시켰다. 2008년에는 일본에 청각 도우미견 육성 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5년 영국에서 개최된 ‘크러스트 도그쇼’ 삼성전자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진돗개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제공=삼성전자

삼성전자 스마트폰에도 이 선대회장의 개 사랑이 담겨 있다. 갤럭시 휴대폰에 *#0*#을 입력하면 나타나는 이미지 테스트 모드에는 강아지 사진이 나타나는데 이는 이 선대회장의 개 사랑이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게 정설로 통한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이 선대회장의 노력으로 한국의 국가 이미지가 개선되고 생명의 소중함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는 점은 분명한 사실”이라며 “우리나라에서 애견 관련 신산업이 창출되는 등 관련 분야에서 이 선대회장이 남긴 족적이 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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