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치핀(linchpin)은 자동차의 핵심 부품으로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축을 지탱한다. 린치핀 없이는 자동차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우리나라 복지에서 중요한 것은 필요한 사람에게 복지를 지원하는 기준이다. 그런 측면에서 ‘건강보험료 수준’은 복지 지원 기준선으로서 중요한 린치핀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보험료는 임신·출산 등 의료비 지원부터 아동·장애인·노인 돌봄, 청년 취업 지원까지 핵심 복지 사업에서 지원 기준으로 활용되고 있다. 코로나19 지원금 역시 건보료를 기준으로 정했다. 또 금융기관에 대출을 신청할 때 필수 서류 중 하나가 건보료 납부 증명서다.
이렇듯 현재 건보료는 국민 소득·생활 수준을 판단하는 대표 기준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전제가 있다. 과연 건보료는 실제 납부 능력에 따라 공정하게 산정되고 있는가. 실상은 그렇지 않다. 특히 일부 고소득 지역가입자의 ‘편법 회피’ 문제가 그렇다. 자영업자·프리랜서 등의 지역가입자는 소득이 불규칙하다. 이들의 여건을 반영하기 위해 외환위기 때인 1998년부터 지역가입자가 소득 감소를 주장하면 건보공단이 보험료를 조정해주고 있다. 하지만 일부 고소득 프리랜서들이 소득이 있음에도 조정 신청을 하거나 허위로 서류를 꾸며 건보료를 회피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두 가지 맹점을 노린 것이다. 공단이 현재의 소득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과 추후 소득을 확인하더라도 보험료를 재부과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는 것이다.
언론에 보도된 사례를 보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알 수 있다. 방송작가 A 씨는 2018년 5억 7900만 원, 2019년 9700만 원, 2020년 8100만 원 등의 수입을 얻었다. 원칙대로라면 A 씨는 월평균 약 149만 원의 건보료를 내야 했다. 하지만 매년 소득이 없다며 서류를 제출했고 배우자의 피부양자로 등재해 한 푼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문제는 성실 납부자에게 피해를 전가한다. 사회보험 특성상 누군가는 이 공백을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저소득층도 건보료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 다행히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건보료 부과 체계를 개편하면서 소득정산제도를 도입했다. 이는 직장 건보료 연말정산과 유사하다. 지역가입자가 보험료 조정을 받으면 다음 해 11월 실제 소득 자료와 비교해 ‘보험료 정산’이 이뤄진다. 조정 이후 수입이 늘어난 사람들은 추가로 보험료를 납부해야 하고 반대인 경우 환급받을 수 있다. 실제 소득에 대해 빠짐없이 건보료를 부과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하면 편법 감면을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제도 시행 이후 1억 원이 넘는 고소득자 중 건보료 조정 건수가 50.7% 줄었다. 공단은 이를 통해 5년간 1조 3567억 원의 재정 누수를 방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 11월 최초로 건보료 소득 정산이 이뤄진다. 그 대상은 지난해 9~12월분 보험료 조정을 받은 사람들이다. 사회적 합의로 부과 체계를 두 번 개편했지만 갈 길이 아직 멀다. 더 공정한 린치핀이 되려면 ‘소득정산제도’가 안착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