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다시보기] 진리의 감각과 스타일

심상용 서울대학교미술관 관장

도망치는 엘 마라가토를 쏜 페드로 수사, /프란시스코 데 고야,1806, 판넬 위에 유화.

1806년 여름 스페인을 뜨겁게 했던 사건이 일어났다. 감옥에서 탈출해 도주하던 극악무도한 강도 엘 마라가토가 한 주택에 침입해 가족을 인질로 잡았고 때마침 자선을 구하려 그 집에 들렀던 프란치스코회 수사 페드로 데 잘디비아까지 붙잡혔다. 하지만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어 보였던 페드로 수사가 흉포한 엘 마라가토를 제압했다. 이 사건은 강대국에 시달리던 스페인 민중의 애국심과 사기를 북돋아 신문과 각종 인쇄물은 물론 노래로까지 만들어져 스페인 전역으로 퍼져 나갔다.


‘엘 마라가토를 쏜 페드로 수사’는 고야의 다른 걸작들에 비하면 작고 평범한 삽화로만 보인다. 하지만 시카고 아트인스티튜트의 유럽 회화 및 조각 분과의 큐레이터 레베카 롱은 이것을 고야의 가장 탁월한 작품들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사소해 보이는 사건에서 진리를 포착해내는 번뜩이는 감각이야말로 이 스페인 화가의 재능의 실체라고 믿기 때문이다. 진리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스스로를 드러내는가. 톨스토이에 의하면 군대가 전투 대신 노래를 부를 때, 많은 금화로도 가난한 농부의 암소를 빼앗지 못할 때, 날카로운 낫이 잘 들지 않을 때, 큰 장사치가 적선을 받는 형편이 될 때 그렇다.


고야의 화풍이나 스타일, 손쉬워 보이지만 치밀한 구성, 느슨한 색채, 부드러운 치아로스쿠로(chiaroscuro·명암법)는 이 진리의 감각과 분리되지 않는다. 이 경우에는 엉거주춤한 자세와 의도적으로 빠르고 성긴 붓질이 강도 엘 마라가토의 품위를 깎아내리고 그 공백만큼 해학적 풍미를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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