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방위 산업과 반도체의 파트너십

김정회 한국반도체산업협회 부회장. 사진제공=한국반도체산업협회

9월 초 폴란드에서 개최된 방산 전시회에서 우리 방위산업은 많은 관심을 받았다. 폴란드, 호주, 아랍에미리트(UAE) 등으로 수출이 확대되고 있는 K-방산이 방산 강국들과 어깨를 겨눌 수 있는 수준까지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 방위산업에는 얼마나 많은 우리 반도체가 사용되고 있을까. 주요 무기체계는 대부분 해외 제품에 의존하고 있다.


크리스 밀러는 저서 ‘칩 워’에서 반도체 기술의 업그레이드가 미국 군사력의 도약에 이바지한 바가 크다고 설명하고 있다. 레이저 유도 미사일 시스템 등에 반도체 기술을 적용한 것이 무기의 정확성을 높이는 등 국방력의 강화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국방부, 첨단연구계획국(DARPA) 등 정부 기관이 반도체 연구개발을 지원하고 미국 방산기업들이 반도체회사와 긴밀히 협력하고 있다.


다품종 소량의 특성을 띠는 국방용 반도체 시장은 2022년 약 80억 달러의 시장 규모로서 전체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상대적으로 작다. 다만 무기체계의 첨단화가 진행되어 고성능 전자기기가 요구됨에 따라 반도체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특히 최근 AI 반도체를 포함한 센서, 신호처리 반도체 등이 무기체계의 진화를 이끌고 있다. 국가안보 관점에서 국방용 반도체를 소홀히 할 수 없는 이유다.


국방용 반도체 분야는 진입장벽이 높아 그간 우리 기업들의 역할이 제한적이었다. 신뢰성과 견고성, 보안 요구조건 등 엄격한 군사사양을 만족하는 것이 쉽지 않아 납품실적이 많은 외국 기업이 주도하였기 때문이다. 무기의 특성상 극저온 등 어려운 환경하에서도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위해 국내 기업은 상업용 제품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추가적인 기술개발도 필요하다.


상업용 분야에서 경쟁력을 가진 우리 반도체 산업과 존재감을 키우고 있는 방산업계 간의 협력은 흥미로운 아이디어이다. 다만 안정적인 무기체계 운용의 필요성 등 넘어야 할 장애가 많아 단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상업용 기술이 발전한 전력관리 반도체, 디스플레이 구동칩 분야는 방산 분야로 확장해 나가고 통신 등 방산 분야가 경쟁력을 가진 분야는 상업화될 수 있도록 상호 기술이전 전략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도 과거 비독점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국방 기술의 상업용 확장을 지원한 사례가 있다.


방위산업의 외형이 커진 만큼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 차원에서 업그레이드를 검토할 시점에 도달했다고 판단된다. 포도주와 치즈의 마리아주가 중요하듯이 반도체 산업은 방위산업의 업그레이드를 도울 수 있는 좋은 파트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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