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 기업의 증시 입성을 돕기 위해 도입한 우회상장제도 이용 기업이 최근 10년 동안 고작 7곳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규제 강화, 기업인수목적회사(SPAC·스팩) 도입 등으로 우회상장제도가 유명무실해진 만큼 활성화·통폐합 방안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2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년~2023년 8월)간 우회상장제도를 통해 증시에 입성한 기업은 7곳에 불과했다. 우회상장은 비상장 기업이 코스피나 코스닥에 이미 상장한 기업과의 합병 등을 통해 공모주 계약 등의 절차를 밟지 않고 곧바로 장내에 진입하는 제도를 의미한다. 국내 주식시장의 마지막 우회상장은 지난해 6월 코스피 상장사인 동원산업과 비상장 법인인 동원엔터프라이즈 간 흡수합병 건으로 벌써 1년 3개월이 지난 상태다. 현재 예비 심사 중인 우회상장 사안도 지난달 16일 코스피 상장사인 DB와 비상장 법인인 DB메탈 간 흡수합병 신청 건이 전부다.
우회상장은 2006년 벤처기업들의 자본시장 진입을 활성화하기 위해 도입됐다. 도입 초기에는 별도의 심사 없이 비상장 기업에서 제출한 서류가 요건에 맞기만 하면 상장을 승인해줬다. 당장의 수익은 적지만 미래 사업성이 좋은 기업들 입장에서는 직상장보다 훨씬 간편하게 증시 자금을 모을 수 있는 방안이었다.
하지만 이를 악용한 도덕적 해이가 만연하자 제도 도입 5년도 안 돼 큰 변곡점을 맞았다. 거래소는 2008~2010년 허위 세금계산서를 발행해 매출 실적을 부풀린 코스닥 상장사 네오세미테크 등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잇따르자 2011년부터 신규 상장에 버금가게 우회상장의 문턱을 높였다.
2009년 12월 출범한 스팩제도도 우회상장을 크게 위축시킨 요인이 됐다. 스팩은 실질 심사 과정을 거친다는 점에서 우회상장보다는 직상장에 가까운 제도라는 평가를 받는다.
2010년까지만 해도 25건에 달했던 우회상장 건수는 규제가 강화되고 스팩 활용이 본격화된 2011년부터 곧바로 0건으로 급감했다. 이후로도 매년 0~2건 정도만 유지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금융감독원조차 올 3월 “스팩 합병을 통해 우회상장하는 회사가 급증하고 있다”고 표현할 정도로 기존 우회상장은 잊힌 제도가 됐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규제 강화로 우회상장의 진입 요건이 높아진 동시에 스팩을 통해 상장하는 사례가 많아져 우회상장으로 증시에 입성하는 기업들이 줄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우회상장제도를 지금처럼 유명무실하게 둘 것이 아니라 당초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활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했다. 당장 기업공개(IPO)를 할 수준은 아니지만 성장성은 충분했던 업체들의 사례가 얼마든지 있다는 점에서다. 현재 시가총액이 20조 원을 훌쩍 넘은 셀트리온(068270)은 2008년 코스닥 상장사였던 오알켐에 흡수합병되는 방식으로 증시에 입성했다. 카카오(035720)와 JYP엔터테인먼트(JYP Ent.(035900)) 등도 우회상장의 성공 사례로 꼽힌다.
일각에서는 계륵이 된 우회상장제도를 차라리 직상장제도와 합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신규 상장 절차와 큰 차이점이 없는데 두 제도를 따로 둘 이유가 없다”면서 “차라리 합치면 행정 비용이라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별다른 대책을 검토하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거래소 관계자는 “나중에라도 우회상장을 원하는 기업이 있을 수도 있어 이미 있는 제도를 없애기 어렵다”면서 “제도를 합칠 생각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