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수장 공백 사태…전원합의체·인사 중단 위기

표류하는 이균용 임명동의안
'이재명 표결' 野지도부 총사퇴등
정치 격랑에 오늘 표결 물건너가
30년만에 권한대행체제 전환할 듯
전합 선고 중단 등 재판지연 우려
정치권 표결 시기 조율 가능성도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안 표결이 사실상 중단되면서 대법원이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유례없는 상황을 직면했다. 특히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체포동의안 표결이라는 정치적인 사안과 맞물리면서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할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연말까지 여야 대치 정국이 이어질 경우 전원합의체 선고와 법원 정기인사 등 대법원 기능의 전면 중단으로 인한 피해가 속출할 것이란 우려마저 나온다.


24일 정치권과 법조계에 따르면 오는 25일 국회 본회의 개최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야는 이날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을 상정해 표결할 예정이었지만, 더불어민주당 원내 지도부 사퇴로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평가다. 현재 예정된 다음 본회의는 11월 9일이다. 대법원은 사법부 수장 공백이라는 비상 상황인 만큼 이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 처리를 여야가 원 포인트로 합의해 처리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다음달 10일부터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대법원장 후보자 표결은 우선 순위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다.


본회의가 개최되더라도 인사청문회에서 재산형성 과정과 관련한 각종 의혹으로 야당의 집중 질타를 받은 이 후보자를 반대하는 기류가 강한 상황이라 표결 과정에서 부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윤석열 대통령은 새로운 대법원장 후보자를 지명해야 하고, 국회 인사청문특별위원회 구성부터 대법원장 인선에 관한 모든 과정이 처음부터 다시 진행해야 한다. 대법원 입장에선 모든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에 놓여 있는 셈이다.


일단 대법원은 법원조직법에 따라 25일부터 선임 대법관인 안철상 대법관의 권한대행 체제로 전환된다. 대법원이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되기는 지난 1993년 이후 30년 만이다. 당시 김덕주 대법원장이 부동산 투기 문제로 사퇴하면서 최재호 대법관 권한대행 체제로 운영됐다. 당시 후임자가 임명되기까지 2주간 최 전 권한대행 체제에서 전원합의체 선고 등 별다른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다.


재판 지연은 더욱 심각해진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판례 변경을 결정하는 중요한 재판으로 대법원장이 재판장을 맡아 진행한다. 지난 8월 10일 기준으로 전원합의체에는 손해배상청구 소송, 교원소청심사 취소 소송 등 총 5건이 상정돼 있는데, 당분간 선고가 나오기도 어렵다는 게 법조계의 중론이다. 전원합의체는 대법원장을 포함한 13명(법원행정처장 제외)의 대법관 중 3분의 2 이상 출석이면 의결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재 12명의 재판관이 찬반 의견이 동률일 수 있다는 점에서 전원합의체 개최가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김재형 전 대법관 퇴임 이후 후임자인 오석준 대법관 임명동의안이 장기간 표류면서 3개월 가량 전원합의체가 열리지 않았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권한대행을 재판장으로 전원합의체를 개최할 수도 있지만 자칫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논란이 큰 사건일 경우 안 대법원이 그 책임을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또 대법원장이 공석이 상황에서 나온 전원합의체 결과에 사건 당사자들의 불만이 나오는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권한대행 업무가 많아질수록 안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3부 심리도 차질을 빚을 수 밖에 없다.


대법원 관계자는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에 대한 법률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전례가 없는 상황인 만큼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검토 중”이라고 했다. 한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는 “임기를 불과 몇 개월 남겨둔 안 대법관이 부담을 안고 사건을 처리하기보단 후임 대법원장 임명을 기다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법원장 공백이 장기화될 경우 법관을 비롯한 법원 인사에도 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오는 1월 임기 만료로 안 대법관과 민유숙 대법관이 퇴임을 앞두고 있다. 대법관 후보자 임명 제청권은 대법원장 몫이다. 통상 2개월 전에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구성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법관 인선도 지연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 대형로펌 변호사는 “권한대행 체제가 장기화할 경우 대법원은 내년 2월 정기인사까지 고민할 수 밖에 없다“며 “법원 인사가 연기된 전례가 없는 만큼 전임 대법원장이 임명한 법원행정처장의 역할이 커질 수 밖에 없는 상황까지 계산해 정치권에서 대법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 표결시기를 조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오는 11월 임기가 만료되는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후임자 임명 과정도 순탄치 못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헌법재판소장 역시 지명권은 윤석열 대통령이 행사하지만 국회의 동의를 얻어야 임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장과 헌법재판소장이 동시에 공석인 초유의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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