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애플과 스타트업 한곳서 어울린다…글로벌 창업 생태계의 '출발역'

■프랑스 파리 스테이션F 가보니

이달 8일 오전(현지 시간) 스테이션F 방문객들이 안내 데스크에서 출입 카드를 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파리=박정현 기자

입주사 상호작용의 무대
회의·발표 등 네트워킹 공간부터
대기업·스타트업 사무공간 함께
펍·카페서 자유롭게 일할 수 있어


이달 8일(현지 시간) 프랑스 파리 13구역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창업 허브 ‘스테이션F’는 이른 아침부터 출입증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방문객들로 분주한 모습이었다. 순서대로 안내 데스크에서 출입 카드를 받아 개찰구에 찍고 안으로 들어가니 ‘스테이션’이라는 이름처럼 정말로 ‘역’에 온 듯한 기분이었다. 1920년대 화물 기차역으로 만들어져 외부는 투박한 모습이었지만 내부는 천장에 난 창으로 개방감 있는 공간이 연출됐다. 매일 이곳을 오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모두 수용할 수 있을 정도로 넓은 공간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로 인해 성공에 대한 열정이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였다.


커다란 세 개의 건물이 일렬로 연결돼 있는 스테이션F는 ‘셰어존(Share Zone)’ ‘크리에이트존(Create Zone)’ ‘라 펠리시타(La Felicita)’로 나눠져 있다. 가장 앞쪽에 위치한 셰어존은 세 구역 중 가장 활동적인 곳이었다. 이곳에는 스테이션F 입주사를 비롯해 협력사, 외부 인력의 회의·발표·네트워킹 등 여러 활동이 진행된다. 실제 컨테이너박스처럼 생긴 소형 회의실을 비롯해 곳곳에 마련된 쇼파에서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서로 만나 업무에 대해 토론하는 모습을 쉽게 확인할 수 있었다.



스테이션F의 첫 번째 건물인 ‘셰어존’ 내부 모습. 파리=박정현 기자

두 번째 건물인 크리에이트존은 스타트업·인큐베이터·액셀러레이터(AC) 등 스테이션F 입주사와 기관을 위한 공간이다. 언뜻 보면 셰어존과 유사하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사무용 데스크톱, 전화 박스, 근무자용 사물함 등 업무를 위한 다양한 편의 시설이 마련된 이곳에서는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성공을 위해 자신의 업무에 몰두하고 있었다. 현재 스테이션F에는 1000여 개의 초기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으며 △대학 △기업 △인큐베이터 △AC 등이 들어와 있다. 프랑스 정부도 ‘프렌치 테크 센트럴’을 운영하며 행정 상담부터 민원·비자 등과 관련된 부분을 지원한다.


크리에이트존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애플·마이크로소프트·메타·로레알 등 글로벌 기업들이 입주해 있다는 것이다. 이곳에서 여러 스타트업과 바로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물론 육성 및 지원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2021년 스테이션F에 입주한 후 최근 외부로 이주한 프랑스 스타트업 ‘오메나’의 박하연 이사는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의 경우 ios 앱스토어에 문제가 생기면 바로 애플 상주 직원에게 가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글로벌 기업 입주로 편리한 점이 많다”고 설명했다.


마지막 건물은 음식점이 모여 있는 ‘라 펠리시타’로 스테이션F에서 출입증 없이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다. 8개의 레스토랑·펍·카페 등이 모여 있어 음식이나 음료를 주문해 먹으며 자유롭게 대화하고 일할 수 있다.



스테이션F의 마지막 건물인 ‘라 펠리시타’ 내부 모습. 세 개의 공간 중 유일하게 외부인에게도 열려 있어 출입증 없이 방문할 수 있다. 파리=박정현 기자

성장성보다 중요한건 열정
기업 특성 맞춰 직접 프로그램 짜야
고정 커리큘럼 없어 더 큰 책임 필요


스테이션F에서 만난 관계자들은 “고정된 커리큘럼이 없어 스타트업의 특성에 맞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해외에서 온 스타트업의 초기 정착을 위한 ‘파운더스 프로그램’이나 주거 공간인 ‘플랫메이트’ 등을 제공하지만 사업적인 부분에서는 필요한 프로그램을 입주 스타트업이 찾아 지원해야 한다. 2019년 한국 스타트업 최초로 스테이션F에 입주한 ‘위시어폰’의 이단비·강지형 공동대표는 “프랑스에서 일을 할 수 있도록 비자나 주거 공간에 대한 부분은 기본적인 지원 체계가 마련돼 있다”면서도 “무조건 들어야 하는 강의, 참여해야 하는 프로그램 등 정해진 커리큘럼이 없기 때문에 슬랙이나 할 시스템(Hal system)에 올라온 공지를 보고 사업 특성에 맞는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직접 찾아 지원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스타트업들이 스스로에게 적합한 커리큘럼을 만들어가야 하기 때문에 열정과 책임감은 필수다. 박 이사는 “스테이션F 입주를 위한 인터뷰를 할 때 창업가 정신에 대한 질문을 많이 받았다”며 “성장성보다 창업가들이 얼마나 일을 하고 싶어 하고 열정적인지를 중점적으로 평가한다”고 전했다.


또 스타트업·대기업·학교·정부 등 수많은 입주사 중 어느 한 곳이 스테이션F 전체를 관장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대신 이들은 하나의 축으로써 거대한 창업 생태계를 함께 조성한다. 스테이션F의 역할은 입주사들이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스테이션F 입주사 중 하나인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스쿨랩(SCHOOLAB)’의 호지연 매니저는 “스테이션F는 가장 아래 스타트업, 그 위에 인큐베이터와 AC, 맨 위에 스테이션F가 있는 피라미드 구조”라며 “위에서 아래로 심사와 지원을, 밑에서 위로는 돈을 지불하거나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하는 방식으로 상호작용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한 구조 속에서 각 입주사들은 하나의 조각으로서 스테이션F 전체를 구성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션F의 두 번째 건물인 ‘크리에이트존’ 내부 모습. 스타트업 근무자들이 이 공간에서 자유롭게 업무를 보고 있다. 파리=박정현 기자

스테이션F는 글로벌 스타트업 캠퍼스를 표방하는 만큼 전 세계에서 온 스타트업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분위기 조성에 힘쓰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어가 아닌 ‘영어’가 공용어로 사용되고 있고 스테이션F를 총괄하는 디렉터(감독)도 프랑스인이 아닌 미국인이다. 박 이사는 “프랑스 사회가 굉장히 폐쇄적이기 때문에 프랑스인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다”며 “스테이션F의 가장 큰 장점은 프랑스인이 아닌 다른 국적의 사람을 총책임자로 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나도 프랑스에서 외국인이기 때문에 디렉터를 보며 나도 여기서 잘할 수 있다는 용기를 얻는다”며 “한국에도 많은 외국인이 있는데 이들이 자유롭게 창업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이션F의 ‘크리에이트존’에서 스타트업 관계자들이 자유롭게 근무하고 있다. 파리=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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