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의 1차 협력 업체 부사장인 김 모 씨는 2013년부터 2016년까지 협력 업체에만 제공되는 현대차의 비밀 자료를 외국 회사에 줬다가 적발돼 재판에 넘겨졌다. 1심 재판부는 “(해외) 경쟁 업체들이 훨씬 적은 비용과 시간을 들이고도 현대차와 비슷한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게 돼 현대차가 유무형의 막대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어 엄벌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기업은 국내 기술 유출의 사각지대다. 특히 국내 주요 대기업의 핵심 협력사로 기술력인 뛰어난 강소 중소기업이 주요 타깃이다. 기술력과 달리 보안 체계가 대기업보다 허술해 기술 탈취가 손쉽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20년간(2003~2023년 7월) 산업기술 유출 적발 건수를 기업 규모별로 보면 전체 552건 가운데 중소기업은 총 368건으로 전체의 66.7%를 차지했다. 기술 유출 10건 가운데 6건 이상은 중소기업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뒤를 이어 대기업은 27.4%(151건), 대학·연구소 5.9%(33건) 등의 순이었다.
2003년 기점으로 5년 단위로 나눈 기간별로 살펴보면 중소기업이 2003~2007년 77건으로 대기업 35건보다 2배, 대학·연구소 7건보다 10배 이상 많았다. 2008~2012년에는 중소기업이 138건으로 대기업(46건)에 비해 3배 , 대학·연구소(6건)의 23배, 2013년~2017년 중소기업은 97건으로 대기업(31건)보다 3배, 대학·연구소(11건)의 8배 이상 유출이 많았다. 가장 최근인 2018~2023년 7월까지 중소기업은 56건으로 대기업(39건)보다는 2배, 대학·연구소(9건)의 6배 이상 적발 건수가 높았다.
기술 탈취 수법은 고액 연봉을 미끼로 기술력을 갖춘 중소기업의 핵심 인력을 통해 유출하는 것이 가장 빈번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유럽의 한 업체가 2020년 배터리 업계의 유망 중소업체 임직원에게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며 주요 기술을 빼돌리는 것을 적발했다. 당시 유출된 기술 가치는 수천억 원에 달한다.
앞서 2014년에는 국내 이동통신 중계기 개발사의 상무가 경쟁 업체인 미국 경쟁사로 회사 기밀을 빼돌리다 국정원에 적발되기도 했다. 당시 매출 500억 원대였던 강소 기업은 핵심 기술 유출로 문을 닫아야 했고 대표도 지병으로 세상을 떴다. 한 업계 관계자는 “중소기업은 한 번의 기술 유출로 한순간에 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항배 중앙대 산업보안학과 교수는 “대기업 협력 업체의 기술 유출은 결국 대기업의 피해”라며 “해외 진출 기업을 위한 보안 관리 전담 별도 기구 설립 등 보안 체계 구축을 위한 범국가적인 대응 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