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는 한 작가의 전시가 미술관에서 열리기까지 최소 2~3년이 걸립니다. 한국은 창작·전시 등에 대한 공공 지원이 1년 기간이지만, 미국은 장기적으로 꾸준히 지켜보는 오래된 네트워크가 중요합니다. 작가를 키운다는 것은 그 정도의 시간 투자와 소통, 논의 과정이 필요해요. 이번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 서울(Dive into Korean Art Seoul)’은 머지않은 미래에 실질적 성과를 낼 수 있을 것입니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이재이 작가는 25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달 초 열린 ‘키아프-프리즈 서울’ 기간의 성과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는 해외 미술계 주요 인사 18명을 한국으로 초청해 9월 3~6일까지 4일간 서울·경기 소재 작가 12명의 작업실을 방문하고, 국내 미술 관계자들과의 네트워킹 시간 등을 제공한 프로그램이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23~2024 한국방문의 해’ K컬처 관광이벤트 100선에 선정된 국제 아트페어 ‘키아프(KIAF)와 ‘프리즈(Frieze) 서울’ 개최 기간에 맞춰 주최했다.
지난해 ‘프리즈 서울’을 기점으로 서울은 명실상부 아시아 미술 시장의 주요 거점이 됐고, 행사 기간에는 글로벌 미술계의 ‘큰손’들의 방한과 함께 다양한 파티와 수십억 원 대 작품 거래의 축포가 곳곳에서 터졌다. 국제 미술계의 관심은 한국 작가들로 이어져 아트 페어가 ‘K아트’ 확산의 발판이 되는지 여부에 자연스럽게 모아졌다. 이에 3회 째를 맞은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는 보다 실질적인 성과를 위해 해외 미술계 초청 인사들을 ‘실무자’ 중심으로 구성했고, 사전 설문으로 관심 분야와 작가를 파악해 ‘맞춤형’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우선 한국미술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3일 오전부터 시작된 프로그램의 첫 행사로 정연심 홍익대 교수가 한국 근·현대미술에 관한 강의를 진행했다. 김환기·유영국 등의 추상미술과 AG그룹 등을 위시한 실험미술, 민중미술과 모스트모더니즘의 영향, 대안공간의 등장과 비엔날레 등 100년 역사를 압축적으로 개괄했고 다양한 질의응답이 오갔다.
첫 번째 작업실 방문은 서울시립미술관 난지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해 있는 이희준 작가. 프랑스 보르도미술관의 큐레이터 세드릭 포우크는 “사진 프린트와 종이가 이어지지 않은 채 겹쳐 있어 서로 충돌하는 것 같이 보이는데 제작 방법이 궁금하다”고 했다. 미술평론가 에반 모핏은 “피카소의 작업도 레퍼런스가 됐느냐”며 큰 관심을 보였다.
첫날 김지영·권혜원 등 주목받는 젊은 작가들의 작업실을 돌아본 초청단은 다음날에는 서울문화재단 금천예술공장의 김인배 작업실을 비롯해 류성실·민성홍 작가를 만났고, 이후 윤향로·심래정·이진주·홍승혜·박그림·이재이 등을 차례로 방문했다. 파주에 작업실을 둔 이진주 작가에게 독립큐레이터 예뻬 울빅은 “DMZ부근 전시가 열리는 파주에 대해 알고 있다”고 했고, 이 작가는 “정치적,역사적 기묘함을 가진 파주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업이 있다”고 소개했다.
중견작가 홍승혜의 작업실을 방문한 아트아시아퍼시픽의 에이치지 마스터즈는 “디지털아트로 복잡한 것들의 가장 기본적 속성을 보여주려고 한 게 흥미롭다”고 말했다. 다양한 질문을 쏟아내는 초청단을 돌려보낸 뒤 홍 작가는 “세계적인 해외 인사들을 이렇게 한 번에 만나 교류할 수 있는 큰 기회를 얻었다는 점에서 한국작가로서 자부심을 느꼈다”고 소감을 밝혔다.
작가 뿐 아니라 국내 미술관·평론가·전시기획자들과의 네트워킹 프로그램도 실속 있게 꾸려졌다. 참가자들의 관심사와 수요를 미리 파악한 후 미디어아트, 미술관 교류 등 공통 주제에 맞춰 같은 테이블로 배치해 적극적인 대화가 오갈 수 있었다. 이 외에도 전시장 방문, 국내 신진작가와의 교류, 성과공유회 등이 이어졌다. 3박 4일 일정을 함께 돌아본 싱가포르 예술과학뮤지엄의 서비스 디렉터 에이드리안 조지는 “작가들의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발표가 인상적이었고, 스튜디오 방문을 통해 작가마다 서로 다른 스타일을 엿볼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 미국 스미스소니언 허쉬혼미술관 큐레이터 벳시 존슨은 “국제적인 동향을 파악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큐레이터는 새로운 미술계의 동향을 보여주고 알리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이라며 한국의 미술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감을 드러냈다.
이번 ‘다이브 인투 코리안 아트’는 피상적인 정책 지원이 아니라 국내외 미술계의 직접적인 교류 활성화를 추진했다는 점에서 한국 미술의 해외 저변 확대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영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한국 미술과 작가에 대해 깊은 관심을 기대하며, 앞으로도 지속적인 관계를 맺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