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철범 칼럼]나라 곳간 활짝 연 칼리굴라의 말로

전기료 누진제 완화 탓 한전 적자 눈덩이
인기영합정책, 결국 시민에 부담 전가
초기 박수받지만 지속 못하고 반감 불러
내년 총선, 정치권 포퓰리즘 경쟁 말아야


티베리우스는 제정 로마의 2대 황제다. 수려한 외모와 함께 황제가 되기 전부터 군인은 물론 행정관으로서 뛰어난 자질을 보여줬다. 운동신경 또한 뛰어나 젊었을 때는 그리스에서 개최된 올림픽 종목 중 하나인 전차 경주에서 우승한 이력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황제에 즉위하고 나서는 국가 재정의 건전화를 위해 세금 제도를 정비하고 당시 로마 시민들에게 무료로 제공되던 검투사 시합과 전차 경주를 폐지하기도 하는 등 긴축재정 정책을 폈다. 후계자로 생각했던 조카와 친아들이 잇달아 요절하고 나서는 카프리섬에서 은둔하며 로마를 다스렸다. 본래 내성적인 성격에 더해 카프리섬에서의 은둔 정치와 긴축재정 정책으로 당대의 로마인들 사이에는 근거 없는 소문과 험담이 나돌았고 덕분에 인기가 아주 없었다고 한다.


티베리우스의 뒤를 이은 3대 황제 칼리굴라는 할아버지 티베리우스의 낮은 인기를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인지 황제에 즉위하자마자 로마 시민들에게 검투사 시합과 전차 경주를 무료로 제공했다. 또 국가 재정의 근간이 되는 매상세(오늘날의 소비세)를 폐지하고 즉위 후 첫 7개월 동안 매일 잔치를 열었다고 한다. 티베리우스와는 다른 칼리굴라의 통 큰 재정지출에 당시 로마 시민들은 환호했다. 칼리굴라의 재위 기간 인기를 유지하기 위한 과도한 재정지출은 황제의 사유재산뿐 아니라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밖에 없었다. 칼리굴라 역시 이를 깨달았지만 인기 유지를 위해 매상세를 부활시키거나 무상 스포츠·연극 제공을 폐지하지는 못했다. 대신 국가와 황실 재정 수입을 올리기 위해 황실의 가재도구와 패물을 팔기도 했고 시내에서 거래되던 장작에도 세금을 부과하는 등 좀스러운 정책을 짜내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시민들로부터 받는 인기에 연연했지만 재위 4년을 채우지 못하고 암살을 당했을 때 슬퍼했던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약 2000년 전 로마에서 있었던 티베리우스와 칼리굴라의 이야기는 무분별하게 인기를 좇는 정책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절약하는 성격을 국가 운영에도 보여준 티베리우스는 인기 있는 정치인은 아니었지만 로마 제국의 초석을 다진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반면 칼리굴라의 과도한 인기 영합적인 정책은 초기에는 큰 박수를 받았지만 장기간 지속될 수 없기에 결국 시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2000년이 지난 지금 무료 프로 스포츠 경기 또는 무상 영화 제공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없지만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눈앞의 인기만 추구하는 정책들은 아직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무리한 탈원전 정책과 전기료 누진세 완화는 매년 수조 원의 흑자를 내는 건실한 기업이던 한국전력공사를 순식간에 빚더미에 올려놓았다. 물론 최근 원유 가격 상승으로 연료 구입비가 급증한 이유도 있지만 변동이 심한 연료 구입비를 고려하지 않고 당장 낮은 전기료를 유지한 것은 전기 판매로 인한 수익이 발전 단가에도 미치지 못하는 구조를 만들었다. 그 결과 한전은 지난해 한국 공기업 최악의 실적인 32조 6000억여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한전의 적자를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결할지 모르겠으나 미래 전기료의 급격한 인상 또는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면 초기에 박수를 받았지만 누더기 세금을 부과해 시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킨 칼리굴라와 다를 것이 없어진다.


몇몇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하고 있는 탈모 치료 지원 정책도 그러하다. 탈모 환자들이 겪는 스트레스를 이해하지만 여드름이 많아서 고민인 환자와의 형평성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저출산·고령화로 미래 건강보험 재정지출이 늘어날 것이 확실한데 미래를 위해 자금을 적립하지는 않고 유권자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지금 당장 탈모 지원에 돈을 쓰자는 정책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내년에 치러질 총선이 이제 머지않았다. 여야 정당들은 선거에서 이기는 것이 목적이겠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눈앞의 인기에 연연하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올까 걱정된다. 인기 유지에 최선을 다했지만 비참했던 칼리굴라의 말로를 기억하고 이번 총선에서는 현재 당선에 도움만 되는 정책 경쟁이 아닌 국가의 미래를 생각하는 정책 경쟁을 볼 수 있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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